아플때 생각나는 할머니 음식
나 흰죽 먹고 싶어. 할머니.
시험 끝 스트레스 탓인가?
요 며칠 큰아이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열이 오르락내리락. 병원에 가서 주사라도 한 대 맞고 오라 그리 당부를 했건만 일어날 힘도 없다며 꼼짝도 안 하고 누워 있더니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어리광을 피운 모양이다. 손자의 전화 한 통에 엄마는 한걸음에 우리 집으로 달려왔다. 쌀을 씻어 가스레인지 위에 솥을 올리고 나서야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그냥 내가 끓여줘도 되는데 힘들게 뭐 하러 왔어."라고 말하자 '내가 아니면 누가 해?'라는 표정이다.
쟤는 내가 너보다 더 잘 알지.
그냥 죽이 아니라
내가 만든 음식이 먹고 싶은 거야.
나도 몸이 아프면
우리 할머니가 끓여준 흰죽이 그리울 때가 있어.
생각해 보면 엄마는 내가 아프다고 할 때도, 내 아이가 아플 때도(특히 배가 아프다거나 열이 날 때) 꼭 흰죽을 끓여주었다. 엄마표 흰죽은 생쌀로 만드는데 밥알이 퍼지지 않아 탱글탱글하고 식감이 좋다. 쌀과 물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게 흰죽이라지만 약불에 팔이 떨어져 나갈 만큼 오랫동안 저어가며 끓여야 고소하고 깊은 맛을 내는 엄마표 흰죽이 완성된다. 거기에 참기름 한 방울과 깨소금을 잔뜩 올린 간장소스와 같이 먹으면 보양식이 따로 없다.
역시, 난 우리 할머니가 끓여준 흰죽이 제일 맛있더라.
"한 솥 끓여놨으니 잘 먹고 다녀. 이건 식어도 맛있으니까."
어린 시절 엄마보다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더 많은 아이는 고맙다는 말대신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을 보여주는 것으로 감사 인사를 대신했고, 엄마는 그런 아이를 보며 말하지 않아도 모든 걸 다 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이제 간다. 오늘은 공부고 뭐고 푹 재워라."
엄마는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신신당부를 하고 돌아갔다.
몸과 마음도 지쳤을 때 할머니의 손길이 생각나는 아이.
그걸 바로 알아채고 달려와주는 고마운 나의 엄마.
그 둘의 사이가 고맙고 부러운 나.
아이는 할머니의 흰죽을 먹고 어느새 기운을 되찾은 듯했다. 할머니표 흰죽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