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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을 기록합니다(1편)

일상기록

by 한그루

1월 [함께 거닐다]

운동 좀 하라는 남편의 잔소리에 ‘함께 걷기’를 택했다. 목적지는 없다. 발걸음이 닿는 대로, 내키는 만큼만 걷는다. 안양천도 가고 공원도 가고…. 오늘은 남편과 동네 구석구석을 걷다가 예쁜 카페를 찾았다. 분명 운동을 한다고 나갔는데 수다만 떨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함께 거닐 사람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2월 [느릿한 시작]

밤새 눈이 왔다. 동네가 하얗게 덮였다. 사람들은 길이 미끄러워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옮기면서도 전화기를 꺼내 풍경 사진을 담아낸다. 오늘 출근길은 뛰는 사람도 서두르는 사람도 없다. 느릿느릿한 시작이 마음에 든다.


3월 [엄마를 위한 날]

선물할 꽃을 사러 화원에 갔다가 나를 위한 꽃을 한 다발 사 왔다. 꽃 이름도 꽃말도 모르지만 봄을 닮은 여리여리한 꽃이 정말 예쁘다.

“오늘 무슨 날이야?” 둘째 아이가 묻는다.

“엄마를 위한 날?” 얼렁뚱땅 말했더니 아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인*타에 글을 올렸더니 친한 언니가 바로 댓글을 남겼다.

- 너랑 닮았다.마트리카리아.


4월 [순례자의 길]

몇 해 전 다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 잠시 갇혔던 기억은 이후 나의 여행에 큰 걸림돌이 된다. 가까운 거리지만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부담은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불안으로 커져 갔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출발 전 안정제 몇 알을 배낭에 챙겨 넣었다. 그렇게 난 여행자가 아닌 순례자로 일본 나가사키에 다녀왔다.

작은 시골 도시, 아름다운 자연 안에서 내가 믿는 신을 만나고 기억할 수 있어 감사했다. 신앙은 기쁜 것이다.


5월 [아이들의 경주]

예상을 못한 건 아니지만 사춘기 남자아이들에겐 여행보다 핸드폰의 작은 세상이 재미있는가 보다. 여행을 와서도 핸드폰을 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 사진이나 좋으니 하루에 세장씩 내 카톡으로 보내라는 미션을 주었다. '가족들의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는 사람에게 상금을 전달하겠다고 했더니 '아이들의 경주'가 사진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2박 3일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은 사진들은 우리 가족을 더 단단하게 하는 것 같다.


6월 [테레사체]

생일 전날 아무도 없는 집에 친정 엄마가 다녀갔나 보다. "생일 축하해"라고 쓴 엄마 메모를 보니 가슴이 몽글몽글해졌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손주들에게 용돈을 줄 때도 봉투에 꼭 한마디라도 써준다. 엄마의 세례명을 따서 '테레사체'라는 이름을 붙여보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글씨체를 기억하고 싶다. 엄마의 마음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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