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엔 세게 밀어줘
종녀씨와 함께 목욕 가는 이 길이 특별하다고 느껴지는 건 내가 나이를 먹은 탓일까?
5월 아파트 담장엔 빨간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었고, 단지 안은 킥보드, 자전거 타는 아이들로 왁자지껄하다. 집에서 목욕탕까지 고작 십 분도 채 되지 않는 너무나 평범한 이 장면들이 언젠간 너무나도 그리운 장면이 될 것 같아 마음 깊이 담아 두고 싶어졌다.
나와 동생은 매주 엄마와 목욕탕에 간다. 딱 우리 셋만 모이는 시간이다.
정해진 순번은 없다.
한 주는 내가, 그다음 주엔 동생이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목욕을 가자고 전화를 하면 누가 말하든 엄마의 대답은 늘 똑같다.
귀찮은데…
그러고는 1분도 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묻는다.
"지금 나가면 돼?"
예전 같으면 갈 거면서 왜 그런 소리를 하냐며 타박을 했겠지만 이젠 안다.
'귀찮은데'라는 말속엔 '기다렸다'라는 마음도 숨어있다는 걸 말이다. 이것이 울 엄마의 표현 방식이다.
내가 자란 동네엔 '백조 목욕탕'이 있었다. 우린 주말이 되면 엄마 손에 끌려(?) 목욕탕에 갔더랬다. 몸을 씻고 온탕과 냉탕을 들어갔다가 나왔다가를 반복하며 몸을 불리고 나면 엄마는 피부가 빨개지도록 이태리 타올로 내 등을 밀었다.
“아프다고! 제발 살살-”
투정과 짜증을 부리면, 엄마는 다 끝나간다며 가만히 있으라고 등을 찰싹 때렸다.
다음부턴 절대 엄마랑 안 오겠다고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목욕 끝에 어김없이 들려 있던 달달한 바나나맛 우유 때문에 다음 주에도 또 그다음 주에도 엄마를 따라 목욕탕에 갔다.
뜨거운 탕 안에 몸을 담그자 엄마 입이 풀렸다.
오늘의 주제는 '아빠'다.
"같은 얘기를 세 번해야 알아들어. 또 고집은 얼마나 센지…."
"사람은 참 착해. 남들한텐 더 착해서 거절도 못해요. 술 마시면 집으로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자다말고 일어나 술상도 차려내고 그랬다니까."
"다 할 것처럼 큰소리만 치지 결국 마무린 내 차지지 ."
'너네 아빠는 말이야'로 시작한 말은 칭찬보다 흉에 가까웠지만 온탕에서 우리는 엄마 기억 속의 착하디 착한 아빠를 다시 만났다.
내 등은 오늘도 엄마에게 맡겼다. 이젠 아무리 세게 밀어도 아프지 않은 엄마의 손길이 더 애틋하고,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오늘은 대충 비누칠만 한다. 다음 주에 또 올 거잖아?"
"그러엄."
다음주가 되면 분명 또 귀찮다 할 테지만 엄마랑 목욕탕에 와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이거만큼은 내가 사줘야지."
목욕을 마친 뒤, 엄마는 바나나맛 우유를 건낸다. 엄마가 사주는 이 우유 오래오래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