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쉬어가기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안하고 쉰다'라는게 가장 어려워졌다.

by 서리태

그런 날이 있다. 이상하게 원하던 계획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허무한 날.


내게는 그 날이 바로 어제였다.

1시쯤 오픈하는 카페에 가기 위해 시간이 떠서 아침에는 여유로운 웹서핑과 함께 핸드폰을 했고, 나름 하루의 계획도 새우며 시간에 맞게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정말 드라마처럼 현관으로 나가려는 그 순간 비가 어마어마하게 내렸다.


웬만한 비라면 우산을 쓰고 나가면 되었지만 그 비는 우산을 쓰더라도 온몸이 다 젖을 정도의 엄청난 비였고, 앞이 안보일 정도로 가득 내리는 비에 나는 순간적인 판단을 통해 카페가는 계획을 취소하고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하지만 성격 자체가 항상 계획을 세워두는 성격이었던 나는 집에서 밥을 먹자마자 '이제 뭐하지...?'가 되었고, 어딘가 원래 계획이었던 카페에서의 공부를 다른날로 미룬 계획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후 뭐라도 한 하루를 만들기 위해 넷플릭스로 영화를 봤지만, 영화를 봤음에도 어딘가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찝찝함과 함께 벌써 하루가 지나가버렸다는 허무함, 거기에 밥도 대충 있는거로 아무거나 먹고 때웠다는 기분에 마음이 금세 안좋아졌다.


벌써 저녁인데 한 일은 없는 것 같고, 오늘 하려던 모든 일은 다음으로 미룬 채 하루가 그저 흘러가버렸다는 생각에 기분도 안좋으면서 이제와서 뭘 하자니 애매한,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을 보내며 저녁을 보냈다. 그러면서 '내일만큼은 제대로된 하루를 보내겠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더 견고한 내일의 계획과 함께 몇번이고 내일은 비가 억수로 쏟아져도 무조건 밖으로 나가서 의미있는 하루를 보내겠다고 스스로에게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그렇게 그날은 밤까지 '아무것도 안한 날'이 되어서 허무하게 잠이 들었지만, 그 덕분에 그 다음날은 다짐처럼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나와 알찬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아무것도 안한 그날은 지금 생각해보니 퇴사 이래 처음으로 집에만 머물었던 날이었다. 물론 매일매일 시간만 흘려보내서는 안되고, 하루하루를 소중히 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가끔은 그렇게 '쉬어가는 날'도 종종 필요하다는 생각이 그날이 지나서야 비로소 들었다. 그렇게 잠시 멈추는 날이 있어야 다른 날 더 힘내서 보낼 수 있다.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이념 아래 매일 어제와는 다른 하루'를 보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지내고 있는데, 그렇게 매일을 알차게 보내다 보면 하루하루에 쏟는 열정은 줄어들고, 어느때부터는 자연스럽게 어정쩡하게 알찬 하루들을 보낸다. . 그러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스스로에게 의구심도 품게 되고, '내가 잘 지내고 있는 건가?'하는 의심 속에서 비슷한 내일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가끔씩(쉬는날이 아주 많으면 안되고, 가끔씩... 어쩌다인게 좋은 것 같다.) 쉬어가는 날을 만들어주면 그동안 달려온 내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살고있었는지도 스스로 생각해보게 되고, 스스로 격려해주면서 이후 다시 달릴 힘을 만들어준다. 매일매일 비슷하게 열심히 사는 것보다 살짝 다른 하루가 낌으로써 하루하루가 더 소중해지고 값져진다.


그래서 나는 어제의 나를 더이상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매일 바쁘게 살아온 내게 하루 휴식을 주면서 에너지도 재충전하고, 다른날 더 힘낼 수 있게 만들어줬음으로 그날의 의미는 있는거다. 뭐, 나름 처음 본 영화를 보기도 했고.


그렇게 든든한 마음으로 힘을 얻은 채 오늘 하루도 알차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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