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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맑음 Sep 20. 2024

빈칸에 들어갈 말

유맑음 동화#5

 “영예의 대상은 바로!”


 두구두구두구.

아이들이 손바닥으로 일제히 책상을 두드렸다. 모두가 선생님 입술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내 짝 선우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김. 선. 우. 축하합니다!”


 방금 전까지 손톱을 잘근잘근 씹던 선우 어깨를 으쓱이며 곧장 교실 앞으로 나갔다. 선생님은 글씨가 빼곡한 달력 하나를 펼쳐 들었다. 같은 반 아이들와, 하며 탄성을 질렀다. 선우가 팔짱을 끼고 눈썹을 들썩였다.


 “선우는 가족들과 알찬 겨울방학을 보내겠구나. 정말 잘했어.”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우야. 교실 뒤 게시판에 네 달력을 걸어두어도 되겠니?”

 “당연하죠.”


 선우의 달력이 게시판 한가운데 달렸다.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들이 게시판 앞으로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나도 그 사이에 뭉게뭉게 끼었다.


 달력 쓰기 대회는 우리 반에서만 특별히 열 행사다. 다가올 겨울방학 계획을 달력에 적어내기만 하면 되었다. 대부분 아이들은 일주일에 세네 가지 일정을 적었다. 수학학원 가기, 영어학원 가기, 태권도 가기… 정도다.


 일등 선우는 달랐다. 석 달 중 비어있는 칸이 하나도 없었다. 떤 칸은 좁쌀만 한 글씨들이 칸을  삐져나기도 했다.


 ‘엄마아빠와 눈썰매장 가는 날’

 ‘진로체험 가족캠프 가는 날’

 ‘엄마랑 어린이 뮤지컬 [인어왕자 카론] 보러 가는 날’


 선우의 겨울방학은 매일이 소풍날이었다. 아이들이 일등 달력을 보며 입을 삐죽였다. 학원 일정만 가득한 나머지 달력들은 소원을 비는 돌탑처럼 교탁 위에 겹겹이 쌓여있었다.


 4학년 3반 윤지웅. 이름만 대문짝만 하게 써놓은 달력이 내 품으로 돌아왔다. 스프링이 나간 촌스러운 은행달력이다. 엄마는 집에 은행달력을 놔야 돈이 들어온다고 했다. 선우는 아기자기한 캐릭터 달력을 쓰고도 부모님과 매일 놀러 다니는데, 우리 엄마아빠는 매일 돈 벌러 다닌다. 엄마가 거짓말을 한 게 분명.


 그나마 내가 채울 수 있는 칸은 매주 일요일이었다.

 ‘짜장 라면 끓이기

 끄적거리다 지운 자국이 선명했다. 엄마아빠가 운영하는 식당은 주말이 대목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줄곧 나 혼자 짜장 라면을 끓여 먹는다. 달력 쓰기 대회에 내놓기부끄러운 일정이었다. 내가 텅 빈 달력을 제출한 이유이기도 했다.


 선생님 옆에 서 있던 선우가 제 자리로 돌아왔다. 선우는 눈을 얇게 뜨고 내 달력을 흘깃 훔쳐보았다. 선우가 피식, 콧바람을 풍겼다.


 “김선우. 왜 웃어?”

 “큭, 내가 뭘?”

 “방금 내 달력 보고 웃었잖아.”

 “아니, 정말 아무것도 안 쓰고 낸 건가 싶어서. 학원가는 거라도 써서 내지 그랬어.”


 선우가 입 꼬리를 씰룩거렸다. 난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식당 일손이 부족하면 밥 먹던 숟가락도 내려놓고 일을 도와야 했다. 그런데 학원은 무슨.


 “그런 거로 채운다고 뭐가 달라져? 결국 네가 대상인데.”

 자꾸만 나도 모르게 뾰족한 말이 나갔다. 

 “히히, 그런가?”

 선우가 상으로 받은 칭찬 스티커 20장을 보란 듯이 만지작거며 말했다.


 “그런데 선우 너희 부모님은 안 바쁘셔?”

 선우의 방학계획은 모두 부모님과 함께하는 일정이었다.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야 겨우 얼굴이나 보는 우리 가족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엄마아빤 나밖에 몰라. 내가 어디 가자고 하면 아무리 바빠도 꼭 가주셔.”

 세상에 그런 천사 같은 부모님이 다 있다니! 역시 선우의 달력이 빽빽한 건 부모님을 잘 만나서다. 나는 부러움을 꾹꾹 삼키느라 턱이 아팠다.


 종례시간이 끝났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가방을 메고 뒷문으로 달려 나갔다. 게시판에 달린 선우의 달력이 어쩐지 힘없이 펄럭였다.  교실에 남아있던 선우가 게시판 한 구석에 꽂혀있던 압정 하나를 뺐다. 그러고는 풀럭거리는 자기 달력에 푹 꽂아 단단히 고정시켰다. 얼마나 자랑스러우면 저럴까 싶었다.


 띠링. 하굣길에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지웅아. 대파 두 단만 사서 식당으로 좀 와. 엄마가 깜빡하고 안 사 왔네.]


 선우 부모님은 대파 심부름 같은 건 안 시키실 거다. 늘 하던 심부름이지만 오늘따라 신경질이 났다.


 단골 채소가게를 가려면 학교 뒤편 누추한 골목시장을 지나야 했다. 익숙한 길이지만 괜히 늦장을 부리고 싶었다. 시장 길을 찬찬히 둘러보며 터벅터벅 걸었다.

 그때, 어디선가 버럭 대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 할머니! 이 중에 하나라도 해야 애들한테 들통이 안 난단 말이야!”

 “그러게 누가 거짓말로 쓰라더냐? 남 속여다 일 등 돼봐야 속만 시끄러운 거여.”

 “그럼 뮤지컬이라도, 응?”

 “할미가 다 늙어서 어디를 간다냐! 으휴, 집 나간 애비를 탓해야지. 늬 애미 한국 오면 가자고 혀!”

 “엄마가 언제 올 줄 알고!”


 어르신께 언성을 높이던 아이의 책가방이 낯익다. 내 짝 선우 가방이었다. 나도 모르게 샛길로 몸을 얼른 숨겼다.


 “지 자식 먹여 살린다고 바다 건너가더니만 통 연락이 없으니, 원…….”

 할머니가 마른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내리쳤다. 선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할머니 미워!’를 속으로 백만 번쯤 외치고 있는  같았다. 가슴이 조마조마해 더 이상 엿들을 수 없었다. 나는 살금살금 뒷길로 빠져나와 멀리 돌아갔다.


 대파 한 단씩을 양손에 든 채 식당에 도착했다.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엄마가 내 손에 들린 대파를 홱 채갔다.

 “내일 오는 줄 알았다, 얘. 얼마나 멀다고 이렇게 오래 걸려?”

 “지름길로 못 가는 바람에…….”

 “됐다. 고생했어. 이제 손님들 몰릴 시간이니까 손 씻고 엄마 좀 도와다오.”


 우리 엄마는 전에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퉁명스럽고 성질이 급하며 내게 큰 관심이 없다. 그래도 식당에 오면 언제든 엄마가 있었다. 새삼 안심이 되었다.


 붐비던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할 때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가방에서 볼품없는 달력을 꺼냈다. 종이 끝은 오그라들었고, 스프링은 소가 핥고 가기라도 한 듯이 한 방향으로 찌그러졌다. 그래도 아직 요일 칸은 깨끗했다.


 뭉툭해진 몽당연필을 잡았다. 연필 촉은 12월 1일 금요일을 향했다.


 ‘엄마랑 양파 다듬기’


 다음은 12월 2일 토요일.

 ‘아빠랑 접시 닦기’


 적다 보니 머릿속에 할 일들이 계속 떠올랐다.

 3일은 ‘수저 소독 돕기’

 4일은 ‘테이블 정리 돕기’


 금세 일주일 칸을 가득 채웠다. 계획 앞에 ‘식당에서’라는 말만 적지 않으면 꽤나 알찬 일주일이 되었다. 모두 엄마아빠랑 함께할 수 있는 일정이다. 상을 노린 것도, 거짓말도 아니었다.

 나는 12월 한 달치 계획을 꼬박 채웠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보니 어쩐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다음 날, 교실에서 가장 먼저 마주친 건 선우였다. 일찍이 와있던 선우는 멍하니 책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압정으로 콱 박아놓은 제 달력을 보는 듯했다. 어쩌면 저 많은 소풍 중에 하나쯤 이뤄지는 상상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저기, 선우야.”

 “응?”

 “우리 방학 때 용돈 모아서 [인어왕자 카론] 같이 볼래? 하루 정도는 부모님 말고 나랑 놀자. 우리 엄마아빤 너무 바빠서 뮤지컬 같은 건 꿈도 못 꾸거든.”

 모르는 척 선우에게 말을 꺼냈다. 괜한 얘길 했나, 손에 땀을 쥐었다.

 “정말?”

 다행히 선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응. 어때?”

 “난 좋아!”


 나와 선우는 마주 보며 웃었다.

 집에 가면 달 한 칸을 더 채울 수 있게 됐다.


 ‘선우 뮤지컬 보러 가기’


어제 얘긴 굳이 꺼내지 않기로 했다. 선우도 나도 진짜로 이룰 수 있는 계획이 생겼으니까. 우리의 따뜻한 겨울 방학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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