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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맑음 Sep 26. 2024

바다가 파란 이유

유맑음 동화#7

 하얀 파도가 넘실대다 곧장 내 발등을 감쌌다. 찬기가 돌아 발가락이 얼얼했다. 바닷물이 발목까지 차오르길 기다렸다. 그러면 꼭 너른 바다 한가운데 우뚝 선 기분이었다.


 “찬희야, 뒤로 물러 서. 감기 들면 어쩌려고.”

 엄마가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네, 엄마. 오랜만에 바다에 오니까 신기해서요.”

 엄마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바닷물에서 발을 뺐다. 걱정하는 엄마 얼굴이 싫었다. 벌게진 발가락에 온기가 돌자 저릿했다. 엄마는 다시 환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표정이다.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엄마는 웃었다.


 “푸른 바다가 정말 아름답지? 네 형도 바다를 참 좋아했는데.”

 엄마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우려 했다. 나는 다급히 할 말을 지어냈다.

 “엄마, 엄마. 바다는 왜 파래요?”

 생뚱맞은 질문에 엄마는 풋, 하고 웃어 보였다.


 “찬희 그거 아니? 바다는 사실 커다란 그림자란다.”

 “그림자요?”

 “응. 먹구름 도깨비의 그림자야.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할 만큼 몸집이 아주 커다랗지.”

 “얼마나 크길래 보이지 않아요?”

 “바다만큼 크고 넓겠지? 온 세상을 뒤덮고 있을지도 몰라.”

 “말도 안 돼! 세상에 그런 괴물이 있다니!”


 농담인 듯 아닌 듯 엄마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엄마는 나보다 키가 조금 작은 내 그림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찬희야, 네 그림자를 한번 보렴. 낮에 보는 그림자는 검푸르고 선명해. 하지만 밤에는 그림자를 볼 수 없지? 바다도 그래. 낮에는 파랗게 보이지만, 밤에는 보이지 않. 밤하늘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새까맣지. 그건 바다가 그림자이기 때문이야.”

 “그럼 우린 먹구름 도깨비 그림자를 밟고 서 있는 거요?”

 “그렇지! 햇볕을 피하려면 시원한 그늘을 찾듯이, 사람들은 이 커다란 그림자를 찾아오는 거야.

 엄마 턱에 호두 모양 주름이 졌다. 억지로 웃을 때 나오는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났다.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만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찬희야. 엄마가 따뜻한 음료 좀 사 올게.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네…….”


 엄마 긴 치맛자락을 붙잡고 모래 위를 걸었다. 나는 바닷물을 머금은 엄마의 발자국만 바라보았다. 먹구름 도깨비가 궁금했다.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게 머릿속에 가득했다. 어떻게 생겼는지, 뭘 먹고 그렇게 커다래졌는지, 그리고 하늘에서 만난 우리 형은 어떻게 지내는지도.


 나는 푸른 바다가 까만 밤하늘이 되도록 기다렸다. 엄마는 깜깜무소식이었다. 걱정이 되었지만 여기 있어야 했다. 엄마가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으니까. 안 그러면 엄마가 미간을 찌푸릴 테니까.


 밤하늘엔 어느새 잿빛 구름이 몽글몽글 모여있었다.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이 꼭 구르는 먼지 더미 같았다.


 ‘먹구름 도깨비도 저렇게 생겼을까?’


 바닷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덥지도 차지도 않은 꿉꿉한 바람이 살결을 스쳤다. 바람 때문에 잿빛 구름이 더 잽싸게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구름 뭉치는 쳐다볼수록 커다래다. 불꽃놀이 폭죽처럼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먼지 더미라니!”

 어디선가 장난기 있는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어 주위를 살폈다.

 “누구야?”

 “누구긴, 먼지 더미지. 쳇!”

 옆에는 앉은키만 한 먼지 뭉텅이가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엇, 너는…… 혹시 먹구름 도깨비?”

 “그래! 내가 바로 먹구름 도깨비다!”

 “이상하다? 먹구름 도깨비는 아주 크다고 했는데…….”

 먹구름 도깨비는 상상과 달랐다. 솜사탕 아저씨가 서비스로 크게 만들어준 솜사탕만 했다. 군데군데 검은 구름이 끼어서 곰팡이 핀 솜사탕처럼 보였다.


 “먼지도 모자라 이젠 곰팡이라고?”

 먹구름 도깨비가 언성을 조금 높였다.

 “어? 너 혹시 내 생각을 읽는 거야?”

 “당연하지. 먹이를 구하려면 그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해.”

 “먹이?”


 눈코입이 없는 먹구름 도깨비가 먹이를 찾는 게 희한했다. 음식이 대체 어디로 들어가는 걸까? 피식 웃음이 새 나오려는 걸 꾹 참느라 혼이 났다.


 “쳇, 내 먹이는 나 말고 아무도 먹을 수 없거든?”

 이번에도 내 속마음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먹구름 도깨비 속에서 작은 번개가 번쩍였다. 신경질이 난 듯했다.


 “미, 미안. 넌 뭘 먹고사는데?”

 “나는 슬픈 생각을 먹고살아. 그래서 난 밤에만 돌아다녀. 밤에는 사람들이 슬픈 생각을 많이 하거든.”

 “슬픈 생각을 먹는다고? 난 네가 별이나 달 같은 걸 먹고 살 줄 알았어.”

 “퉤퉤. 그런 건 맛이 없어. 특히 태양은 너무 뜨거워서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다니까? 역시 슬픈 생각이 제일 맛있어, 쩝.”

 먹구름 도깨비가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구름 뭉치 속에 작은 소용돌이가 일었다. 언뜻 꼬르륵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먹구름 도깨비는 냄새 맡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킁킁,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는군.”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이제야 먹구름 도깨비가 조금 무서워지려 했다. 콧잔등에 괜히 식은땀이 났다. 먹구름 도깨비는 그새 내 생각을 읽었는지 풋, 웃으며 내게 말했다.


 “무서워할 거 없어. 아직 네 차례는 아니니까. 저쪽에서 더 달콤한 냄새가 나고 있거든.”

 먹구름 도깨비가 바람을 일으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엔 누군가 아주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바로 엄마였다.


 “우리 엄마를 먹겠단 거야? 그건 절대 안 돼!”

 나는 먹구름 도깨비를 가로막고 섰다.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풉! 무슨 소리야. 난 사람은 안 잡아먹어. 슬픈 생각을 한 조각 떼어먹을 뿐이지.”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

 “음, 점점 잊히겠지? 슬픈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지잖아. 그건 내가 슬픈 생각을 매일 조금씩 떼어먹기 때문이야.”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반짝 좋은 생각이 났다. 엄마 얼굴에 진 그늘을 밝힐 방법. 그러니까 3년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 형을 잊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있잖아. 우리 엄마 생각을 먹을 거라고 했지?”

 “응.”

 “그럼 슬픈 생각은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먹어주라. 우리 형 생각은 하나도 안 나게 모조리.


 작고 통통했던 먹구름 도깨비 몸집이 한껏 불어났다. 주위에 모래바람이 휘잉 불었다.

 “안 돼! 그랬다간 내 배가 터지고 말 거야. 여기저기 먹을거리가 하도 많아서 손톱만큼씩 잘라먹어야 해. 그렇게만 해도 다 돌고 나면 얼마나 배부르다고.”

 “하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조각씩이야. 그걸 어기면 얼마 못 가 바다는 몽땅 말라버릴 거야. 이 세상에서 바다가 사라지길 원하는 건 아니겠지?”

 “…….”

 

 먹구름 도깨비는 완강했다. 엄마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먹구름 도깨비는 높은 파도만큼 덩치를 키웠다. 그러고는 아주 빠르게 엄마가 있는 쪽으로 휙 날아갔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큰 조각을 떼어먹어주길 바랐다. 엄마의 치맛자락이 바람에 날렸다. 강한 바람을 맞은 엄마가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쓱쓱 빗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엄마!”


 놀란 마음에 소리쳤지만 마음처럼 크게 질러지지 않았다.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갯벌에 빠진 것처럼 다리도 말을 듣지 않았다. 엄마 뒤에 서있던 먹구름 도깨비가 내 옆으로 가볍게 날아왔다.


 “음냠냠. 역시 내 코는 정확해. 아주 달콤하군.”

 먹구름 도깨비는 슬픈 생각 한 조각을 오도독 씹어먹었다. 그러자 먹구름 뭉치 아래로 물방울이 한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면 비가 오듯 내 옆에서 작은 비가 내렸다. 떨어진 빗방울은 구슬처럼 데굴데굴 굴러 바다로 흘러갔다.

 “저 물방울들은 뭐야?”

 “뭐긴 눈물이지. 저게 모여서 바다가 된 거야. 그래서 바닷물도 눈물처럼 짠맛이 나.”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내 쪽으로 다가다. 나를 보면서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엄마 얼굴엔 은근한 미소가 피어있었다. 먹구름 도깨비가 헛기침을 쿡, 내뱉으며 말했다.


 “큼, 저기 근데 말이지.”

 “응?”

 “내가 방금 먹은 조각은 하늘나라 맛이 아니야. 전에 먹었을 땐 하늘나라 맛이었거든.”

 “그게 무슨 말이야?”

 “주위에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들한테선 하늘나라 맛이 나. 아주 차갑고 씁쓸한 맛이야. 그런데 방금 먹은 건 사랑스러운 장미 향이 났어.”

 “장미 향?”

 “응.”

 우리 엄마는 장미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를 장미 근처엔 얼씬도 못하게 했다. 사실 그건 나 때문이었다.


 “내가 어릴 때 장미 가시에 크게 찔린 적이 있어.”

 “오, 그래. 가시처럼 까슬까슬한 식감이었어.”

 “엄마가 그랬어. 내가 엄마 말 안 듣고 장미밭에서 놀겠다고 칭얼거렸대. 그러다가 손바닥에 큰 가시가 박혔다고 들었어. 지금도 여기에 작은 흉터가 있어.”


 손바닥 한가운데에는 바늘로 콕 찍어놓은 듯한 흉터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잊고 있던 조그만 흉터가 쿡쿡 쑤셨다. 난 형을 잃은 후로 엄마 말이라면 항상 잘 들었다. 그런데 엄마는 고집부리던 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엄마를 슬프게 한 건 정말 나였까?


 먹구름 도깨비는 그새 조각을 꿀꺽 삼켰다. 또다시 구름 뭉치에 작은 소용돌이가 일었다.

 “난 이만 다음 메뉴를 먹으러 가야 해서. 만나서 반가웠어, 친구.”

 “어? 잠시만……!”


 인사할 새도 없이 먹구름 도깨비는 단숨에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동글동글 몽실했던 솜사탕 뭉치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한 결 바람도 불지 않았다. 먼지만 하게 굴러다니고 있거나, 몸집을 어마어마하게 키워서 하늘을 뒤덮고 있을 모습을 떠올렸다. 어딘가에는 꼭 있을 거 같았다.


 열 발 짝 앞까지 다가왔던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파도 소리만 철썩철썩 들려왔다. 내가 선 곳이 하늘인지 바다인지 헷갈렸다. 엄마를 찾으려고 했지만 고개가 움직이지 않았다.


 “찬희야, 뒤로 물러 서. 감기 들면 어쩌려고.”


 엄마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눈이 번쩍 뜨였다. 세상이 환했다. 내 앞에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발을 담그고 있고, 엄마는 내 뒤에 있었다. 엄마 미간을 조금 찌푸린 채 날 보고 있었다.


 ‘예전에 이 장면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발가락이 차가웠다. 발목을 감싼 파도 거품이 간지러웠다. 바닷물에 좀 더 있고 싶었다. 엄마는 걱정하는 눈빛이다. 손바닥에 점 만한 흉터가 욱신거렸다.  


 “엄마, 이 정도로는 끄떡없어요. 조금만 더 있을래요!”

 자신 있게 말해놓고선 뒷머리가 뻐근했다. 혼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 엄마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엄마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발 담갔는데도 말이다. 엄마가 웃으며 신발을 벗어 들었다. 그러고는 내 옆에 서서 함께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발가락에 온기가 돌아 저릿했다. 엄마가 수평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푸른 바다가 정말 아름답지? 네 형도 바다를 참 좋아했는데.”

 형 얘기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엄마도 그래 보였다.

 “저도 바다가 좋아요. 먹구름 도깨비가 보고 있을 것 같거든요.”

 엄마가 새하얗게 웃었다.

 “어머, 찬희 아직도 먹구름 도깨비 얘기를 기억하니? 그건 네 형이 너 들려주려고 지었던 이야기야. 엄마도 그 얘기를 참 좋아했단다.”


 바닷물이 파랗게 빛났다. 바다만큼 커다란 먹구름 도깨비가 하늘에서 움찔거리는 상상을 했다. 엄마랑 나는 먹구름 도깨비 그림자 아래에서 한참 동안 형 이야기를 했다. 무릎까지 찬기가 올라와서야 엄마가 말했다.


 “찬희야. 엄마가 따뜻한 음료 좀 사 올게.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같이 가요, 엄마. 발 시려서 이제 나갈래요.”

 “그래. 엄마랑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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