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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맑음 Sep 23. 2024

도와 도# 사이

유맑음 동화#6

 디오에서 소음공해에 관한 뉴스가 연일 흘러나왔다. 소음나라가 이렇게 강하게 나오긴 처음이었다. 도다는 몹시 두려웠다.


 “도다야. 이번만큼은 절대 선율나라를 가만둬선 안 돼. 어물쩍 넘어갔다간 다음에도 똑같은 이유로 우릴 걸고넘어질 거!”

 며칠새 도다가 소음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다. 그때마다 도다는 윗돌 삼키듯 마른침만 꼴까닥 넘겼다.


 얼마 전, 소음나라 대표가 선출됐다. 선율나라에 맞서려면 의견을 모아 전달할 수장이 필요했다. 만장일치로 도다를 지목했다. 도다는 용감하지도, 목소리가 크지도 않았다. 뽑힌 이유는 단순했다. 선율나라의 수장인 [도]보다 높은 소리 중에 가장 [도]에 가까운 음이기 때문이었다.


 “근데 수장이라면 최소한 이름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 우리 소음나라가 얕보이지 않으려면  수장도 이름이 없어선 안 되지.”

 “그럼 ‘도다’ 어때요? 선율나라 ‘도’에게 용기 있게 ‘다’가서야죠.”

 “아주 딱이야! 우리의 도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수장을 세운 것만으로 소음나라는 축제였다. 소음나라에서 이름을 갖는다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다. 유일하게 이름이 생긴 소음 ‘도다’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도다…? 이름도 완전 구닥다리야.’     


 [도, 도#, 레, 레#, 미, 파, 파#, 솔, 솔#, 라, 라#, 시]


 이들이 바로 강대한 선율나라를 이루는 12 음계다. 고작 열둘 뿐이지만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옥타브를 넘나드는 기술이 출중할뿐더러, 사람귀에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소리들이었다.

 온 세상은 선율나라 12 음계만 기억해 주었다. 특히 음악에선 이들을 빼놓고는 명함도 내밀 수 없었다.

 

 소음나라는 사정이 달랐다. 선율나라 12 음계를 제외한 모든 음들이 모인 곳이 바로 소음나라다. 도와 도# 사이만 해도 무수히 많은 음이 있다. 하루에 한 번 들릴까 말까 하는 음태반이고, 그나마 자주 쓰이는 음이라도 사람들에겐 그저 소음일 뿐이었다. 그러니 선율나라가 소음나라를 무시하는 건 당연하다고, 도다는 생각했다.


 소음나라에 맹렬한 불꽃이 번진 건 지난 주말, 유명가수 '나린'의  콘서트 때문이었다. 예부터 콘서트는 선율나라의 대표 무대였다. 한낱 소리였던 12 음계가 강성한 나라로 우뚝 서는 데에, 크고 작은 공연들이 제법 큰 역할을 했다. 그날 열린 콘서트도 그랬다. 사람들은 12 음계가 다루는 고운 선율을 기대하며 공연장 좌석을 빼곡히 채웠다.


 “다들 평소대로 하자고. 사람들은 우리가 코를 풀어도 좋아하니까.”

 [도]가 턱을 괸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머지 11 음계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각자 알아서들 하는 거지, 너나 잘하셔.”

 [파#]이 콧방귀를 핏, 뀌었다.    


 콘서트 시작 전부터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나린이 마이크에 입을 바짝 대고 노래를 시작했다. 12 음계는 평소처럼 아름다운 선율로 어우러져 춤을 추었다. 관객들 점점 음악에 빠져들었다.


 문제는 클라이맥스였다. 나린이 긴장을 한 탓[파#]이 자꾸 불안하게 움직였다. 떨리는 목소리에 짓눌려 괴로워하던 [파#]은 그만 큰 폭으로 튕겨 나갔다. 음 이탈 사고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제정신이야? 하필 거기서 실수를 하면 어떡해! 선율나라를 우습게 만들 셈이야?”

 콘서트가 끝나고 [도]는 [파#]을 향해 고함을 빽 질렀다.


 “내 잘못이라는 거야? 따지자면 나린이 슬럼프인 게 문제지. 그리고 거긴 솔에서 내려오부분이었다고. 솔이 매끄럽게 넘겨줬으면 이럴 일 없었지!”

 “야, 파#. 말 다했어? 거기서 내가 왜 나와?”

 12 음계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바빴다. 유명가수 음색을 빌려다 삐끗해 버린 건 선율나라 역사에 길이 남을 수치였다.


 [도]는 선율나라 위상에 작은 오점 하나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도]가 말했다.

 “얘들아, 잠깐. 그러고 보면 소음나라에도 책임이 있는 거 아냐?”

 11 음계는 귀를 쫑긋 세웠다.


 “파#이 저 멀리 튕겨나갔을 때, 소음나라는 왜 가만히 보고만 있었지? 파# 가까이 있는 놈 하나라도 나와서 대신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네!”

 “맞아, 소음나라는 두 손 놓고 있었어.”

 “것도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서!”


 선율나라가 쏘아 올린 화살은 금세 소음나라로 날아들었다.


 “선율나라 녀석들, 결국 우리 실수였다고 낙인찍을 작정이야.

 “우리가 맨날 당하고만 있으니까 만만하게 보는 거야!

 “아주 본때를 보여주자!”

 “쪽수로 따지면 우리가 월등히 많지!”


 소음나라 음들이 머리에 흰 띠를 질끈 둘러메고 언성을 높였다. 당장이라도 선율나라에 침범해 12 음계를 해코지할 태세였다. 도다 차라리 소음나라가 예전처럼 참고 넘어가길 바랐다.

 선율나라에 덤비는 건 무모한 짓이야. 억울한 일 당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태풍의 눈에 홀로 선 도다는 입만 삐죽였다.


 “도다. 넌 왜 아무 말이 없어? 화나지도 않아?”

 [라]에 가까운 소음 하나가 뒤편에 숨어있던 도다를 용케 찾아 물었다. 도다는 들키지 않은 척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당연히 화나지……!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해?”

 “그건 우리가 너한테 해야 할 질문 아냐?”

 도다는 아차, 싶었다. 자신이 소음나라의 수장이라는 걸 잠시 잊은 모양이다. 아니면 잊어버리고 싶었거나.


 소음들의 매서운 눈초리는 도다의 입술을 채찍질했다. 도다는 어떤 말이든 꺼내 놓아야 했다.

 “어……. 그, 그럼 치, 침묵시위……? 그건 어때?”

 누구도 다치지 않고 끝낼 수 있는 침묵시위. 급히 둘러댄 것치곤 그럴싸했다.

 “침묵시위? 정말 좋다!”

 “그래! 우린 무시할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자.”

 “이번 사건에 우리 잘못은 없다는 것도!”

 

 도다의 콧잔등에 식은땀송글 맺혔다. 과연 선율나라가 끄떡이나 할까 싶었다. 자칫하면 소음나라쯤은 세상에서 아예 잊힐지도 모르는 거였다. 사람들은 선율나라만 기억하니까.     


 <선율나라는 들어라! 우리 소음나라는 오늘부로 침묵시위에 임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소음나라에게 깊이 사죄하라!>     


 소음나라는 선전포고를 던지고, 침묵시위에 들어갔다.

 세상이 바다에 잠긴 듯 고요했다. 하지만 도다의 예상대로 선율나라는 침묵시위 따위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풉, 뭔 놈의 침묵시위?”

 “언제는 침묵 안 했나? 큭큭.”

 “원래 할 일 없는 놈들이 날뛰는 법이지.”

 12 음계가 소음나라의 열띤 투쟁의지를 한껏 비웃었다.


 소음나라가 침묵시위에 들어간 지 30분이 채 안 됐을 즈음이었다. 음악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소리는 금세 선율나라 몫이 되었다. 모든 귀가 사라지지 않는 한, 소리는 있어야 했다.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도 [도-시-도-시-도-시…]

 주전자 물 끓는 소리도 [레-미-파#-레-미-파#…]

 망치로 못 박는 소리도 [시! 시! 시! 시! 시!]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도 [라 --- 라# --- …]   

  

 심지어 사람들의 사소한 대화 소리까지도 음정을 갖추었다. 수만 편의 뮤지컬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12 음계만으로 이루어진 세상은 그야말로 불협화음 투성이다. 사람들 귀에는 진한 피로가 쌓여갔다. 덩달아 이비인후과를 찾는 손님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선율나라 12 음계도 과로로 병이 났다. 있는 줄도 몰랐던 생활 소음은 너무나 방대했다.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주지 않도록 음량을 조절하는 기술도 능숙해야 했다. 12 음계는 고작 한두 시간 사이에 벌렁 나자빠졌다.


 “더 이상 못해! 못한다고! 이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이야!”

 “소음나라는 이런 궂은일을 어떻게 불평 한 마디 없이 해온 거야?”

 “하아, 소음나라한테 사과하자. 난 항복.”

 녹초가 된 12 음계는 곧장 도다를 찾아 나섰다.  세상시동안 고요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침내 선율나라와 소음나라가 마주 섰다.

“도다, 우리가 잘못했어.”

[도]가 도다 앞에 대뜸 무릎을 꿇었다. 도다는 꼼짝 못 하고 눈알만 이리저리 굴렸다.


 [도]에 이어  [파#]이 말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 음 이탈 사고는 내 잘못이 커. 긴장한 목소리 위에서 선율 타는 훈련을 소홀히 하긴 했으니까.”


 이번엔 [솔]이 말했다.

 “너희들이 해왔던 일을 직접 해보니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더라. 그동안 너희를 무시해서 미안해.”


 하늘 같던 선율나라 12 음계가 모두 도다 앞에 고개를 숙였다.


 도다의 마음이 따끔거렸다. 어쩌면 소음나라를 무시한 건 선율나라가 아니라 도다 자신일지도 몰랐다. 소음들은 12 음계 앞에 당당히 어깨를 펴고 섰다. 도다는 자기 뒤에 늘어선 수많은 소음들을 돌아보았다. 마치 거대한 우주 같았다. 없는 것 같아도, 없이는 아무도 살 수 없는 우주.


 “소음나라가 있어서 선율나라도 빛날 수 있었던 거야.”

 도다가 12 음계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도다 스스로에게 건넨 말이기도 했다. 12 음계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격분했던 소음들의 눈빛도 차츰 누그러졌다. 도다는 [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는 누가 더 높고 낮은지, 그런 건 따지지 자. 우린 각자 맡은 일이 다를 뿐이니까.”

 “그렇고말고!”

 “자, 침묵시위는 이 시간 부로 마무리하고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갑시다. 세상이 우릴 애타게 기다릴 거예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돌아왔다. 소음나라는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어 생활소음을 꾸렸고, 선율나라는 우아한 선율을 만들어 세상에 전했다. 

 

 이제는 종종 서로 돕기도 했다. 그럴 때면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에 [라#] 음이 정확히 맞아 들어거나, 악기 연주 중에 애매한 음정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얼마 후엔 여러 가지 냄비를 두드려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선율나라와 소음나라 간의 장벽은 그렇게 나날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도다는 밤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우주에 사는 별들이 저마다 소리를 낸다면 우리 소음들과 닮았을 거라고. 소음나라는 충분히 아름답고 반짝였다.


 ‘딸깍, 딸깍, 딸깍, 딸깍’


 오늘 하루 도다는 바빴다. 볼펜 버튼에 깃들어 누군가의 심심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도다의 소리 세상을 향해 영롱하게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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