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선생 부인의 일생
김 선생 부인은
일남오녀중 셋째 딸이었다
외아들인 오빠는 중국
일본까지 유람했으나
딸들은 소학교만 보냈고
남존여비 사상으로
어머니가 남자들만
상위에 밥을 차리고
여자들은 방바닥에
밥을 차렸단다
그 시절에는 20살이 지나면
동네에서 노처녀라고
손가락질을 해
남편 얼굴도 못 보고
아버지가 가라고 해서
홀어머니집안의 맏아들에게
시집을 왔단다
과수원 농사와 주유소는
시동생들과 많은 일꾼들
식모들과 같이 일했단다
50년대는 다들 어려워서
밥만 먹여주면
일꾼들이 많이 모였단다
가족들 다 데리고 와서
행랑채에 지내면서
일을 하는 이들도 있었단다
밥을 푸려면
허리가 아플 정도로
일꾼이 많았는데
식구가 많으니
임신 중에
고기가 먹고 싶어도
혼자 먹을 수가 없어
못 먹었다고 했다
시골에서
대구로 이사를 가
인쇄소와 출판사를 하며
삼백 평 큰 집에서 살았단다
부도가 나서
집가구에 빨간딱지가 붙고
전셋집으로 이사했는데
그때 식모도 같이 갔단다
빚쟁이들 때문에
시골동생집으로 쫓겨가며
고생이 시작되었단다
그 뒤 부산으로 가서
장사하는 시동생 아이들을
키워주며 지냈는데
다행히 딸들이 공부를 잘해
그게 기쁨이 되었단다
남편 사업이 걱정되어
골목골목 물어 물어
잘 보는 점집을
찾아다니기도 했단다
그래서 딸들에게
절대 사업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말라고 했단다
자식들 먹이고
학교 보내기도 힘든데
빚쟁이들이
집으로 찾아오기도 해
그 스트레스로 병을 얻어
막내가 중학생 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