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된 친구에게(3)
우리가 만난 남자 이야기로는 책을 한 권 써도 될 정도일 거야. 내 사랑의 설렘과 눈물에 늘 네가 함께였듯, 나도 그랬으니까.
남자 친구와 헤어져 울고 있으면 달려가 말없이 옆에 있어 주고. 했던 말을 하고 또 해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을 때까지 하라며 조용히 들어주고. 술 취하면 그 사람 대신 나한테 전화하라며 신신당부하곤 했었지. 그때는 생사를 가를 것 같았는데... 이제는 뜨거운 시절이 지나가나 봐.
오랜만에 만났던 어느 날,
나는 무심코 어떤 남자 이야기를 꺼냈고, 새삼스레 진지하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던 네가 말했어.
"너 우울증이야. 내일 당장 정신병원부터 가봐.”
나는 당황했고 얼떨결에 그래? 그래야 하나 라고 했지.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건대 나는 병원에 관해 편견이 적어. 우울증은 감기 같은 거라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친구야,
정말로 네가 하고 싶은 건 뭐야?
내 아픈 마음에 대한 다정한 걱정이야?
아니면, 탁월한 어른이 됐다고 착각하는 자의 충고야?
갑자기 잠에서 깬 그 날 새벽,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할 말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함이나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들은 것에 대한 불쾌함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른이 되었고 그에 걸맞은 성숙함을 지녀야 하겠지.
하지만 여전히 꿈을 좇고, 여전히 뜨거운 사랑을 하고, 여전히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간다는 건 미숙함의 증거인 걸까?
어른이 되는 시간이란 게 결국 실망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글/그림 : 두시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