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시언니 Nov 15. 2019

제법 괜찮은 삶을 살 나에게

나에게(1)








오늘은 어땠어?
- 그냥. 똑같았어.
살만했어?
- 죽고 싶진 않았어.
많이 웃었어?
- 아마도.
억지로 웃진 않았어?
- 습관처럼 웃었겠지.

다른 사람들 sns 들여다봤어?
- 어? 응.
다들 행복해 보여?
- 무척이나.
그럼 너는?
- 모르겠어.









누군가의 행복이 너를 불행하게 만드는 걸 봤어.
누군가의 불행이 너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sns 속 맛있는 음식과, 멋진 몸매, 아름다운 얼굴이
포토샵으로 만져진 거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

아메리카노 옆에 은근슬쩍 놓인 고급 차키와 비싼 가방 사진.
리조트 수영장을 배경으로 화려한 페디큐어가 되어 있는 발끝이 보이는 사진.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먹기 #이런 게 행복이지.’
 따위의 글귀들.

그게 부러 웠어?


바쁜 사람들. 아니, 바쁨을 드러내는 사람들.
타인이 나를 찾아 주는 기쁨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들.
시간의 부재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들.

‘#오랜만에 #꿀 같은 휴식 #이런 게 사는 거지.’

그게 질투 났어?


포토샵으로 얼굴만 만져내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잖아.

‘원클릭 뷰티’로 웃음도 만들어 내고  
‘빛나는’으로 뽀얀 세상을 만들기도
‘늦은 오후’로 간지 나는 저녁 식탁을 만들기도 한다는 걸.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충분히 행복해 보일 수 있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어?

타인의 삶이 너의 삶을 들었다 놨다 하게 내버려 두지 마.

웃음도 눈물도 너의 안에서 나오기를.
행복도 불행도 너의 세상에서 만들어지길.












“자기는 진짜 행복해 보여. 일 하고 싶을 때 일 하고, 돈 벌어서 몇 달씩 여행 다니고.
 자기는 항상 여유롭고 고민이 없어 보여. 가만 보면 제일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내 주변에 자기 같은 사람 없다. 부러워 정말."

너도 네가 잘 살고 있는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지.

아, 너도 누군가에게는 행복의 상징이었구나.

사실은 하고 싶을 때만 하는 게 아니라 일이 별로 없는 건데.
사실은 이렇다 할 계획이 없어 몇 푼 안 되는 돈 들고 네 번 씩 경유하면서
알뜰살뜰 다녀온 여행인데.


가끔 너한테 고래고래 소리 질러.

“제발 괜찮은 척 좀 하지 마!”

언제쯤이면 이 소리가 너한테 가 닿을까.

웃고 싶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웃지 마.
울고 싶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울어.

우리 필터 없는 세상에서 살자.












<에필로그>



늦은 밤, 집에 돌아와 화장을 지웠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이 거울 속에 드러났다.
거뭇거뭇한 기미도 있고 눈과 입 주변으로 주름도 파여 있다.

매일 조우하는 나의 민낯처럼 마음도 꺼내어 두 손에 들고 살펴볼 수 있다면.
여기가 이렇게 생겼구나. 여기는 이렇게 다쳤구나. 여기는 이렇게 변했구나.
곱게 분칠 한 마음의 화장도 깨끗한 물에 씻어 줄 수 있다면 나는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가만히 거울을 드려다 보며 말했다.

그럭저럭 살아왔구나.
앞으로도 그럭저럭 살아다오.




좋은 날도 오고 나쁜 날도 올 테니.
그리고 그 모든 날들이 구름처럼 지나갈 테니.
너무 나대지도 말고, 너무 기죽지도 말고.
그럭저럭 살아가다오.



 
살아있다.라고 말하면 살아갈 힘이 생긴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코 밑까지 끌어당기고 말했다.

“살아있다.”






슈퍼맨은 잠시 어떤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물끄러미 내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는 건 어때?”
“그럭저럭이야.”
안간힘을 쓰며 내가 대답했다.
“그러려니...... 하고 살아, 알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박민규 <지구 영웅 전설>











글/그림 : 두시 언니















이전 09화 어른이 됐다고 착각하는 자의 충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