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1)
오늘은 어땠어?
- 그냥. 똑같았어.
살만했어?
- 죽고 싶진 않았어.
많이 웃었어?
- 아마도.
억지로 웃진 않았어?
- 습관처럼 웃었겠지.
다른 사람들 sns 들여다봤어?
- 어? 응.
다들 행복해 보여?
- 무척이나.
그럼 너는?
- 모르겠어.
누군가의 행복이 너를 불행하게 만드는 걸 봤어.
누군가의 불행이 너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sns 속 맛있는 음식과, 멋진 몸매, 아름다운 얼굴이
포토샵으로 만져진 거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
아메리카노 옆에 은근슬쩍 놓인 고급 차키와 비싼 가방 사진.
리조트 수영장을 배경으로 화려한 페디큐어가 되어 있는 발끝이 보이는 사진.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먹기 #이런 게 행복이지.’
따위의 글귀들.
그게 부러 웠어?
바쁜 사람들. 아니, 바쁨을 드러내는 사람들.
타인이 나를 찾아 주는 기쁨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들.
시간의 부재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들.
‘#오랜만에 #꿀 같은 휴식 #이런 게 사는 거지.’
그게 질투 났어?
포토샵으로 얼굴만 만져내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잖아.
‘원클릭 뷰티’로 웃음도 만들어 내고
‘빛나는’으로 뽀얀 세상을 만들기도
‘늦은 오후’로 간지 나는 저녁 식탁을 만들기도 한다는 걸.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충분히 행복해 보일 수 있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어?
타인의 삶이 너의 삶을 들었다 놨다 하게 내버려 두지 마.
웃음도 눈물도 너의 안에서 나오기를.
행복도 불행도 너의 세상에서 만들어지길.
“자기는 진짜 행복해 보여. 일 하고 싶을 때 일 하고, 돈 벌어서 몇 달씩 여행 다니고.
자기는 항상 여유롭고 고민이 없어 보여. 가만 보면 제일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내 주변에 자기 같은 사람 없다. 부러워 정말."
너도 네가 잘 살고 있는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지.
아, 너도 누군가에게는 행복의 상징이었구나.
사실은 하고 싶을 때만 하는 게 아니라 일이 별로 없는 건데.
사실은 이렇다 할 계획이 없어 몇 푼 안 되는 돈 들고 네 번 씩 경유하면서
알뜰살뜰 다녀온 여행인데.
가끔 너한테 고래고래 소리 질러.
“제발 괜찮은 척 좀 하지 마!”
언제쯤이면 이 소리가 너한테 가 닿을까.
웃고 싶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웃지 마.
울고 싶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울어.
우리 필터 없는 세상에서 살자.
늦은 밤, 집에 돌아와 화장을 지웠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이 거울 속에 드러났다.
거뭇거뭇한 기미도 있고 눈과 입 주변으로 주름도 파여 있다.
매일 조우하는 나의 민낯처럼 마음도 꺼내어 두 손에 들고 살펴볼 수 있다면.
여기가 이렇게 생겼구나. 여기는 이렇게 다쳤구나. 여기는 이렇게 변했구나.
곱게 분칠 한 마음의 화장도 깨끗한 물에 씻어 줄 수 있다면 나는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가만히 거울을 드려다 보며 말했다.
그럭저럭 살아왔구나.
앞으로도 그럭저럭 살아다오.
좋은 날도 오고 나쁜 날도 올 테니.
그리고 그 모든 날들이 구름처럼 지나갈 테니.
너무 나대지도 말고, 너무 기죽지도 말고.
그럭저럭 살아가다오.
살아있다.라고 말하면 살아갈 힘이 생긴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코 밑까지 끌어당기고 말했다.
“살아있다.”
슈퍼맨은 잠시 어떤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물끄러미 내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는 건 어때?”
“그럭저럭이야.”
안간힘을 쓰며 내가 대답했다.
“그러려니...... 하고 살아, 알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박민규 <지구 영웅 전설>
글/그림 : 두시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