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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Dec 10. 2019

특별한 손님

여느 때처럼 정신없이 잔무 처리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에 달린 작은 유리에 얼굴을 대고 손을 흔들었다. '누굴까' 하고 문을 열었더니 졸업생이었다. 교실을 거쳐간 수많은 학생들 중에 그가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를 대화 중에서 본인 스스로 나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 무렵 수업을 같이 들었던  학생들이 아직도 서로 연락을 하며 지낸단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학창 시절 자신들이 유난히 말썽을 많이 피웠다는 것이다.


그 학생이 하도 말을 안 들어서 따로 면담을 한 적 있다. 그 당시 그다지 예쁜 학생은 아니었지만, 곧 대학 졸업을 한다고 하니 정말 대견스러웠다. 그가 홀어머니 밑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주말이나 방학 때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게다가 악기 연주도 하고 스포츠도 여러 개 했었다. 예절면에서는 많이 부족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음에는 틀림없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스승께 또 월급이 얼마냐는 둥, 내 자리가 탐난다는 둥의 말을 거침없이 한다. 얘나 지금이나 네가지가 부족한 것은 여전하다. 인성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뀌겠는가? 나이도 학력도 타고난 인성을 쉽게 바꾸지는 못하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자리에 오래 있다 보면 가끔씩 예전 고객들이 이렇게 찾아온다. 하지만 A/S 유효기간 만료로 더 이상 해줄 것은 없다. 계속 열심히 살아라고 응원해 주는 것이 고작이다. 까다로운 고객 역시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다.


하필 내일 또 면담이 있다. 지금 당장은 그리 예쁘지 않은 고객이지만, 만약  몇 년 후에 다시 만난다면 반가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오늘 졸업생과의 재회는 마치 까다로운 고객 때문에 너무 속 태우지 말라는 계시 같았다. 내일 만나는 고객 또한 곧 자신의 길을 갈 거라고, 그리고 어느 날 성인이 될 거라고 말이다. 한자리에 멈춰 있는 나에게도 시간은 계속 간다. 아이들은 자라고, 나는 늙는다. 가끔 나를 빨리 늙게 만드는 아이들이 있지만, 그래도 그런 아이들이 가뭄에 콩 나듯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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