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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Dec 15. 2019

커밍 아웃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이 보낸 힘든 한 주였다. 금요일에는  아이 생일잔치를 하느라 일 마치고 와서 분주하게 보냈다. 치킨집과 분식집에 배달을 시키고, 거실에는 텐트를 설치해서 파티 끝나고 아이들잘 공간도 마련해 주었다. 저녁을 배 부르게 먹고 생일 케이크도 먹고 선물까지 다 열었다. 생일 의식은 다 치른 셈이다. 오랜만에 마사지 팩을 하고 아이들에게도 권했다. 다들 좋아했다. 고객 불평로 시작된 한 주가 일 파티로 막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자러 갔다. 아이들은 한참을 더 놀다가 새벽 한 시나 돼서야 잠이 들었다.


다음날 공연과 연극을 보러 갔다. 이번에는 직장동료와 함께 갔다. 작년에 새로 온 남자로 능력도 있고, 유쾌한 사람이다. 서로 부서가 달라서 그다지 많이 마주치지는 않지만 그래도 평소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다. 전철역에서 만나 첫 공연을 보러 갔다. 해금, 타악기, 그리고 일렉트라닉 악기(악기명을 들었지만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의 실험적인 연주회였다. 연를 시작하기 전에 곡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주제도 좋고 설명도 좋았다. 첫 곡을 듣고 떠나는 사람들이 있어서 늦게 도착해서 뒤에 서있던 우리는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연주를 마칠 때마다 청중들은 한참 후에야 박수를 쳤다. 항상 곡의 종료가 애매했다. 그리고 연주 중간중간에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이 더 있었다. 초대 공연이다 보니 그런 게 나빴다. 쉽게 왔다가 쉽게 가 버리는 게.


동료는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외국인이라 가끔씩 통역도 해 주었다. 맥락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이윽고 마지막 곡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마이크를 든 사람이 동료에게 왔다. 곧 그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마이크는 자연스레 나에게 왔다.  "연주회를 다 들은 지금 소감이 어떠세요?"라는 질문을 받고 난감했다. 연주를 들으며, 음악가들이 의도한 내면 아이와의 화,  자기애를 통한 내면적인 평화 성취는 일어나지 않았다. 허긴 그런 거대한 삶의 목표가 어찌 한 시간 만에 실험곡들을 들으며 이루어지겠는가? 솔직히 음악 감상을 하는 동안 처음에는 새로웠다가 나중에는 점점 짜증스러웠다. 내 몸은 극도로 긴장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해금이 마치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도 언짢아졌다. 하지만 너무 솔직한 감은 인터뷰에 담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 봐도 연주보다는 해석이 더 훌륭한 음악회였다.


동료와 나는 두 번째 공연에 가기 위해 소극장으로 향했다. 공연 시작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서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소극장에서 가까운 식당에 들어갔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이런저런 담화를 나누다가 일과 퇴직에 관한 말이 나왔다. 알고 봤더니 그 또한 힘든 한 주를 보낸 것이다. "내일이라도 퇴직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하길래, "돈 많은 여자를 만나면 가능하지?'라고 대답했더니, "돈 많은 남자?"라고 되묻길래, 나는 그가 나에 대해 말하는 줄 알고, "는 남편이 있는데?"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했다. "아니, 저 말이에요!"라는 것이다. 내심 놀랐지만, 밖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가 스트레이트든, 게이든, 바이섹슈얼이든 나에게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굳이 말하지도 숨기지도 않고 기회가 있을 때 자신이 가깝게 여기는 사람에게만 개인적으로 터 놓는 것이다.


밥을 먹고도 연극 시작할 때까지는 시간이 대략 30분 정도 남아 있어서 우리는 코너에 있는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며 또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잘 다니던 예전 직장에서 이직을 한 이가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인데,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한국에서 사람 사귀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성 소수자들의 생활 방식에 무지한 나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서둘러 차를 마시고 연극을 보러 갔다. 우리가 본 연극은 에드월드 알비의 <동물원 이야기>를 각색한 <개>라는 연극이었다. 무용을 전공한 듯한 여배우가 개를 연기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야기 중간에 주인공 중 한 명이 자신의 동성애 경험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었다. 연극 중에 통역을 할 수 없어서 연극을 다 본 후에 이야기의 줄거리를 동료에게 말해 주었다. 그가 우리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어서 우리는 같은  철역에서 내려 각각의 길로 향해 걸어갔다.


나는 직장 동료를 밖에서 만나는 일이 아주 드물다. 평소에는 일에 대해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해봤더니, 예기치 않게 동료의 성 정체성에 대한 고백을 듣게 되었다. 난생처음 있는 일이다. 주위에 성 소수자가 의외로 많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딸은 오히려 나보다 성 소수자를 먼저 알아본다. 딸의 유치원 교사가 동성애자였고, 친한 친구의 엄마도 동성애자이기 때문인지 성 소수자들의 특성을 잘 파악하는 듯했다. 나는 '약간 다르다!'라고 느낄 뿐, 그 이상을 생각지 않는다. 평소에 나는 (이상이 말한 적 있듯이) 혼자 만의 세계에 너무 골몰하나 보다. '왜 더 일찍 알아차리지 못했을까?'라는 자책과 함께  앞으로는 타인과 더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일찍 알았어도 남자 직장동료와 단둘이 공연을 보러간다고 남편에게 오해를 받을까봐 몇 번을 얘기해야했던 번거러움은 없었을 것이다. 이해심이 많은 남편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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