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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an 05. 2020

갑질 vs 을질

조현아 땅콩 회황, 최호식 여직원 성추행, 조선일보 사장 손녀의 운전기사에 대한 폭언 등 최근 잇따른 갑질 문제가 대두되면서  사회 곳곳에서 갑질에 대해 각성하는 분위기다. 감정 노동 종사자들에 대한 폭언 성희롱 방지를 위해 통화 내용이 녹음된다는 안내 방송이 여기저기 나오고, 알바 학생들을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고 외친다.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자는 좋은 취지다.


지만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중 우리는 최근 갑질에 대한 사회 전반적 자각이 오히려 을질을 유도하는 분위기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 이 주일 간의 휴가 기간 동안 우리 가족은 이곳저곳 다니면서 외식 또는 공연 관람 등을 즐겼다. 그런휴가 기간 동안 불만족스로운 고객 서비스를 여러번 경험했다. 한 피자 가게에서는 음식이 나오고도 손님을 부르지 않고 (평소에는 진동벨을 줬는데 그날은 주지 않아 손님이 별로 없으니까 음식을 가지고 오려나 하고 기다렸다.) 음식이 다 식어 갈 때까지 통보를 하지 않았다. 음식을 가져다주지도 않고 가지고 가라고 말도 하지 않고 카운터에 둔 채로 식게 그냥 두는 것은 내가 생각할 때 직원의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다. 한편 내 친구는 다른 피자 가게에서 피자 두 판을 시키고 먹기 시작했는데 친구 가족이 한 조각씩 먹은 후에 주문한 피자가 아닌 다른 피자가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가 먹다 남은 피자를 가져가서 주문한 피자가 아니라고 말을 하자 직원은 주문한 피자를 받으려면 돈을 반 더 내라고 했단다. 화가 난 친구는 그럼 됐다고 말했고, 그제야 직원은 마지못해 주문한 피자를 만들어 주었단다.


또 한번은 시내에 있는 3층짜리 스타벅스에서 가지고 있던 상품권을 쓰려고 들어 갔다. 주문을 하려고 기다렸더니 몇 분 후에 내 차례가 왔고 직원은 포장 해 갈 것이 아님을 인지한 후 나에게 자리가 있는지 확인하고 다시 카운터로 오란다. 자리를 확인하고 남편이 다시 카운터로 왔을 때 가족들이 마실 것을 이것저것 주문하고 상품권 초과 금액을 현금으로 내려고 했더니, 현금은 받을 수 없고 카드만 된단다. 힘겹게 주문을 마치자 진동벨도 주지 않고 그곳에서 기다리란다. 하지만 나를 더 짜증 나게 한 것은 부조리한 스타벅스 관행보다 그 직원의 말투와 태도였다. 워낙 커피를 즐겨 마시지도 않고 특히 사람들의 스타벅스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평소 이해하지 못하는 데다가 주문 과정에서 짜증이 몇 번 나고 나니 그곳에서 커피 마시는 시간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텔레마케터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 같으면 받지 않고 그냥 무시해 버렸을 텐데 연말연라서 받았다. 텔레마케터의 요지는 새 전화기 할인 프로모션 행사가 있는데, 이 기회에 새 전화기로 바꾸라는 것이다. 프로모션으로 얼마의 할인 혜택을 받게 되는지 설명하는 대신에, 내가 무슨 전화기를 언제부터 사용하고 있는지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내가 대답하는 것을 꺼리자 "어떻게 그것도 모르느냐?"라는 식으로 핀잔을 준다. 결국 지금 새 전화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으니 사양한다는 말로 통화를 끝마쳤다.  평소 같았으면 받지도 않았을 전화를 받고 괜스레 기분만 망쳐 버렸다. 역시 그 직원의 오만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서비스 종사자들의 불친절한 고객 서비스 이외에도 최근 내가 지하철을 타면서 느끼게 된 노인들의 무례함도 어쩌면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일종의 사회적 약자로 인식되는 노인들의 반란 같은 것 말이다. 전에 다른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듯이 지하철에서 내가 본 노인들은 주로 바닥에 침을 뱉고, 타고 내릴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진로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밀고 다니며, 젊은 사람들에게 자리 양보를 무언으로 강요하고, 당신들이 생각하기에 약간 다르게 보이는 사람들을 멸시의 눈으로 쳐다본다.


갑질에 대한 경각심으로 사람들은 이제 갑의 시대는 갔고 을의 시대가 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서비스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물론 손님들에게 폭언과 욕설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분 좋게 인사하고, 상냥하게 대답하는 것은 서비스 종사자의 기본이 아닐까? 갑질 하는 사람에게 당하라는 것이 아니라 갑질을 하지 않는 평범한 고객에게 자신의 직업이 요구하는 기본적인 소양은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인들이 사회적 약자로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의 안락을 위해서 젊은 사람들이 무조건 불편을 겪고 불이익을 당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피하는 것, 다리가 아프면 미안하지만 좀 양보해 주겠냐고 양해를 구하는 것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노인이니까 맘대로 행동해도 되고, 모든 사람들에게 당연히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발상이다. 나도 오래지 않아 노인의 대열에 끼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양보를 당연한 특혜로 생각하는 뻔뻔한 노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이와 관계없이 오랜 시간 동안 서서 가는 것은 앉아서 가는 것보다 불편하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갑과 을의 힘의 논리가 아니라, 갑이든 을이든 자신이 해야 될 본분을 다 하고,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갑이라 잘난 척 할 필요도 을이라 기죽을 필요도 없지만, 자신이 해야 할 도리는 다해야 하지 않나 싶다. 갑은 받은 서비스에 합당한 돈을 예의를 갖춰 지불하고, 을은 돈 받은 만큼의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된다.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다. 갑이든 을이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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