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아이 치과 예약이 있는 것 말고는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한국 전쟁 기념일 밤에 시각이 너무 늦은 관계로 먹지 못했던 부대찌개로 아침 준비를 했다. 요리라고는 소질도 관심도 없는 나이기에, 평소에 음식 만들 때에 재료의 전체적인 조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눈에 보이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마치 전쟁 중에 폭탄을 던지듯이 재료를 집어넣는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 중에서 내가 평소 즐겨 먹는 것은 다 꺼냈다. 김치, 햄, 파, 달걀, 실란트로, 그리고 마른 새우. 코로나 창궐 초기에 사 둔 후 아직 못 다 먹은 라면 사리도 캐비닛에서 꺼냈다. 내가 준비한 재료들은 부대찌개에 넣기에는 약간 어색한 것들이었다. 맛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별로였다. 내가 만든 부대찌개를 억지로 먹고 중국어 공부를 한 후에 가야금 연주를 했다. 예전에 쳤던 곡들이 곧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계속 연습하다 보니 손도 빨라지고 악보 보는 눈도 빨라지는 것 같아서 나름 만족스러웠다. 일본어 공부를 한 후, 외출 전에 점심을 시켜 먹으려고 하는 찰나에 밖에서 큰 소리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 부부였다. 스페인어로 크게 다투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사태가 안 좋게 느껴졌다. 이윽고 "쿵!" 문 닫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문을 열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현관문을 열자 목발을 짚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옆집 남자가 뒤돌아 보았다. 나는 어렵게 운을 떼었다:
나: Good morning! I heard someone arguing earlier. Is everything okay?
옆집 남자: Yes. My wife is mad because we saw a piece of furniture that someone threw out this morning and the aprtment workers knew that we wanted it but it's gone now.
나: I see! (옆집 남자의 목발을 쳐다보며) By the way, is it okay for you to walk around with a broken leg?
옆집 남자: Yes, I am fine!
나: Should I come down with you to talk to the apartment workers?
옆집 남자: No, I am okay!
옆집 남자와 어색한 작별 인사를 하고 집에 들어온 후에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가구길래 가지고 오고 싶었을까? 옆집에 꼭 필요한 가구였을까? 설령 가구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한들 누가 옮겨 올 것인가? 다리 다친 남편이? 임신 칠 개월 된 부인이? 그러다 문득 '두 사람이 지금 얼마나 힘들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서로에게 화를 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다리 다친 남편도 임산부 부인도 둘 다 육체의 감옥에 갇힌 것이다. 직접 다리를 다친 적은 없지만, 임신 말기에 얼마나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는지를 나는 기억한다. 내 몸이 너무 무거워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고통을 말이다. 그리고 얼마 안 돼서 외출을 하러 나가는 길에 주차장에서 나오는 옆집 여자를 만났다. 나는 어제 까먹고 미처 못 물어본 것을 물었다:
나: Hi! I forgot to ask you yesterday: Are you having a boy or a girl this time?
옆집 여자: It's a boy!
나: Oh, great! Congratulations!
나는 또 옆집 여자와 어색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치과에서 진료를 받고 아이와 나는 여느 때처럼 시내에서 쇼핑을 했다. 집에만 있는 아이가 불쌍해서 가끔 시내에 나오면 아이가 좋아하는 옷가게와 문구점에 들른다. 아이는 옷가게에서 티셔츠 하나와 모자 하나를 골랐다. 문구점에서도 작은 물건들을 이것저것 골랐다. 아이는 아빠처럼 쇼핑을 즐긴다. 그리고 우리는 시내에 있는 백화점에 들렀다. 평소에는 백화점에서 쇼핑할 엄두도 못 내지만 백화점 안에 있는 식료품 코너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구매하면 배달을 해 주기 때문이었다. 옆집 부부가 자꾸 마음에 걸려서 작은 선물이라도 해 주고 싶었다. 식료품 코너에서 확인을 해 보니 배달 시간이 저녁 여섯 시였다. 배달 가능한 금액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작은 식료품 코너를 몇 바퀴 돌아야 했다. 우리가 제일 먼저 고른 것은 수박 두 통이었다. 빵 안 먹은 지 너무 오래됐다며 아이가 식빵을 사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 식품코너에는 빵이 없었다. 계산을 마친 후 고객 센터에서 배달 접수를 하고, 백화점 안에 있는 빵집에 들렀다. 칠천 원짜리 식빵과 여러 가지 종류의 작은 빵도 샀다. 그리고 우리가 집에 도착한 지 한참 후인 저녁 여덟 시가 다 되어 가서야 배달이 왔다. 나는 한 손에는 수박을 다른 한 손에는 아이가 먹고 싶어 하던 식빵을 제외한 다른 빵들을 들고 옆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옆집 꼬마가 나를 맞았다. 옆집 부부는 내가 지겨울 것이다. 옆집 여자는 전날 자전거 관련 쪽지 때문에, 그리고 옆집 남자는 낮에 부부 싸움하는데 민망하게 아는 체한 것 때문에. 나는 옆집 꼬마에게 내가 왜 왔는지 말했다.
나: Hi! I brought a watermelone and some bread for you. But I know your dad has a broken leg and your mom has a baby in her tummy so they won't be able to carry this watermelon inside.
옆집 꼬마: Yes! It's pretty hard! (아마도 아이는 현재 본인의 가족 상태를 말하는 듯했다. 그때, 옆집 여자가 현관문으로 나왔다.)
나: Hi! Can I drop off this watermelon inside quick?
옆집 여자: Yes! You can just leave it on the kitchen table.
나는 또 어색한 인사를 하고 재빨리 우리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즐겨 보는 중국 드라마가 끝난 후에 휴대폰을 확인했더니 옆집 여자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옆집 여자: Hi! I am your next door neighbor. Thank you for the gifts. Bread was delicious! This is my phone number.
나: I am glad you liked bread. I will save your numer on my phone. Please feel free to knock on my door any time. I am on my summer break and stay at home most of the time. Good night!
옆집 여자: Thank you! Please know that we are here if you need anything as well. Good night!
친구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더니, 선물을 준 명분을 옆집 사람들에게 밝혔냐고 물었다. 다친 이웃에게 음식 나눠 주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한 풍습인데 그것이 동정으로 비췰까 봐 친구는 걱정을 한 것이다. (미국에서 자란 친구는 평소에 무슨 일이든 선긋기를 확실히 한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아무튼 옆집 사람들이 육체의 감옥 생활을 잘 이겨내고 올해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