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일은 2018년 여름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서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가족 여행을 가서 뉴욕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다녔는데 뉴욕 시내 관광버스를 타고 센트럴 파크를 여러 번 지나게 되었다. 그곳에 유난히 개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중학생이 된 딸아이가 강아지를 너무 갖고 싶어 했다. 아이가 자꾸 조르는 바람에 여름휴가 내내 뉴욕에서도 워싱턴 디씨에서도 버지니아에서도 줄곧 강아지 생각뿐이었다. 오랜만에 미국에서 휴가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몇 날 며칠을 고민했었다. 그 해 여름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는데 결국 이사 가기 삼일 전에 세 달 정도 되어가는 강아지를 집에 데리고 왔다. 강아지는 낯선 곳에 와서 불안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자 딸아이를 졸졸 쫓아다녔다. 처음에는 어린 강아지를 가둬 두기가 불쌍해서 집에 사람이 없을 때에도 거실에 혼자 두었다. 그런데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거실이 말이 아니었다. 강아지가 오르지 않은 곳과 건드리지 않은 물건이 없었다. 그러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 결국 외출할 때에는 강아지를 우리에 가두게 되었다. 그리고 날이 곧 추워지기 시작했고 아이는 강아지 산책을 더 이상 시키지 않았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도 아이는 강아지 산책을 시키지 않았다. 외출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집에 돌아온 후에도 그냥 "잘 있었니?"라고 말하며 한 번 안아줄 뿐 아이는 강아지와 5분 이상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산책도 안 시키고 놀아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강아지 대소변을 빨리 치우지도 않고, 이런 생활은 강아지에게도 사람에게도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아이에게 강아지는 단지 소유물에 불과했다. 그리고 나에게 강아지는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혼자 갇혀 지내는 강아지가 불쌍했다. 그래서 강아지 한 돌을 앞두고 결국 강아지를 다른 데 입양 보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강아지 키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처음 입양 공고를 낸 후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왔다. 그런데 막상 데려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강아지를 보고 예쁘다고 생각하고 강아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강아지를 키우기에는 쉽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은 다 아는 모양이다. 처음에 아이가 강아지를 갖고 싶다고 졸랐을 때, 온 가족이 강아지 키우고 싶다고 했을 때, 끝까지 외면하고 거절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다.
나는 정리 정돈된 집에서 공기를 맑게 해주는 식물을 키우며 휴식하고 싶다. 여름 방학 이전에 몇 년 동안 정성스럽게 키워오던 식물을 다른 곳으로 전근 가는 직장동료가 나에게 주고 갔었는데 결국 강아지가 다 물어뜯고 말았다.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면 짖고, 항상 냄새가 나는 애완동물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에 강아지를 키우고 난 후에야 비로소 내가 얼마나 애완동물을 싫어하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동물의 복지>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소수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의 생각은 아직 <인간의 복지>에 머물러 있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동물의 복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강아지에게 쓰는 돈이 사실 아깝다. 그 돈으로 배고픈 사람에게 양식을 줄 수 있고,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줄 수 있고, 아픈 사람에게 의료비 지원을 할 수 있다. 주위에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도 온정의 손길을 보낼 수 있다. 강아지에게 돈을 많이 쓸수록 내 맘은 편하지 않다. 꼭 사람에게 써야 할 돈을 낭비하는 것 같은 생각이 수 없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부터 강아지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통학 버스를 기다리다가 건널목에서 강아지가 차에 치여서 빨간 피를 흘리며 길 한복판에 누워 있는 것을 본 적이 있고, 대학교 시절 자취집주인이 차에 쳐서 죽어 가는 개를 마당에 내버려 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개는 몇 시간 동안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신혼 시절에는 키우던 진돗개가 자전거에 치였는데 개의 한쪽 눈이 튀어나와서 동물 의사에게 데려가 눈은 다시 넣었지만 그 사건으로 개는 한쪽 눈을 실명했다. (자전거를 탔던 사람은 그 길로 달아나 버렸다.) 이렇게 강아지가 죽고 다치는 것을 몇 번 목격한 이후에 나는 개와 가까이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개와 교통사고를 연관시켜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강아지를 키우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다시 식물을 키우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었다. 강아지에게 쓰는 돈을 좀 더 유익한 곳에 쓰고 싶었다. 강아지에게 쓰는 에너지를 좀 더 필요한 곳에 쓰고 싶었다. 그래서 강아지를 데려온 지 열 달도 채 못돼서 도저히 못 키우겠다고 판단하고 강아지를 입양 보내기로 결심했다. 맨 처음 지역 벼룩시장에 글을 올린 날 당일에 몇 명이 관심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관심이 많았던 두 명 중 한 명은 당장 데리러 온다고 주소를 달라고 했고 다른 한 명은 한 시간을 넘게 문자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하지만 정작 그다음 날 두 사람 모두 마음이 바뀌어서 한 명도 오지 않았다. 그런 후에 나는 다른 SNS에 글을 올렸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몇몇 지인은 "슬픔"이라는 이모티콘을 선택해서 나에게 죄책감이 들게 했다. 우리 가족에게 처음 강아지를 팔았던 사람이 강아지 팔고 얼마 안 돼서 미국에 들어갔는데, 우리 강아지 형제 여섯 마리 중에서 팔다 남은 한 마리를 데리고 갔다. 그 강아지는 몇 달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단다. 강아지가 죽고 슬퍼하는 시어머니가 그 강아지와 닮은 우리 강아지를 갖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래서 강아지 미국 보내는 데 드는 비용을 얘기해 줬더니 더 저렴하게 미국으로 데려올 수 있는 비용을 알아보겠다며 시간을 끌었다. 결국 나더러 텍사스에 오는 사람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곧 한국으로 오는 다른 사람이 강아지를 입양하고 싶다고 하더니 그 사람도 남편의 반대로 입양을 포기했다. 그 사람에게서는 한국에 사는 사람 중에 강아지 키울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말을 끝으로 다시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것 말고도 강아지 무료 분양 온라인 사이트에 글을 올렸지만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부산에 있는 사립 요양원으로 강아지를 데려가기로 했다. 안락사가 없고 깔끔한 시설과 규칙적인 생활에 철저한 의료관리로 강아지가 입양될 때까지 성실히 맡아 주는 곳이라고 광고하고 있었다. 강아지를 운반할 철재 캐리어를 들고 강아지를 데리고 기차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택시를 타면 편하겠지만 강아지와 같이 타는 것을 기사님이 탐탁지 않게 여기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거운 철재 캐리어를 들고 기차역에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기차를 기다렸다. 기차에 탄 후에는 철재 캐리어 안에 들어 있는 강아지를 열차와 열차 사이에 혼자 두기가 그래서 결국 우리에게 지정된 좌석을 포기하고 강아지와 같이 있었다. 부산에 도착한 후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택시 승강장으로 갔다. 그런 날씨에 지하철을 탄다고 고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얼굴에 철판을 깔고 택시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택시 기사님도 강아지를 키우시는 분이라 이해해 주셨다. 여러 애견 분양 샵이 늘어선 곳에서 택시가 멈추었다. 내리는 비 속에서 두리번거리고 보았더니 강아지 요양원은 골목 안쪽 지하에 있었다. 강아지 캐리어와 강아지를 데리고 우리는 계단을 한참 내려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열렸고 젊은 여성이 나왔다. 5시 30분에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얘기했더니 알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테이블로 안내되었고 곧 다른 사람이 나왔다. 처음 나왔던 사람보다는 나이가 한 세 살가량 더 있어 보이는 사람인데 느린 움직임과 적은 말수, 약간 멍하면서 차가운 눈빛이 어쩐지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 곧 설문지 같은 것을 꺼내서 강아지 신상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러는 사이 우리 강아지는 그곳에 있는 다른 강아지 두 마리와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곳에 강아지라고는 딱 두 마리밖에 없었다. 유리 진열장 안에 고양이가 몇 마리 보이는 것 외에는 어쩐지 너무 한적한 곳이었다. 강아지 신상에 대한 정보를 다 적은 후에 강아지를 데리고 안쪽에 있는 방으로 오라고 했다. 안쪽의 방은 아예 텅 비어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 유리 진열장 안에 강아지를 넣더니 아까 있던 방으로 나가자고 했다. 강아지가 짖었다. 그랬더니 그곳 직원이 저렇게 짖는 강아지는 분리 불안 장애가 있는 거란다. 그래서 낯선 곳 아무도 없는 데 갇혔으니 짖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 사람은 일곱 살 먹은 아이가 길 한복판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고 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나는 7살 난 아이가 길 한복판에서 엄마를 잃어버렸으면 우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다시 물었다. 처음 서류를 작성할 때보다 분위기는 더 어색해졌다. 그리고 강아지를 텅 빈 방에서 데리고 나와서 강아지 몸을 여기저기 살폈다. 강아지 이빨을 검사하는데 맨 뒤쪽 이 중간에 노란 점 같은 게 보였다. 치석이란다. 그러더니 강아지 입소 비용을 적는데 기본 60만 원에 의료보험비 10만 원에 치과 치료비 20만 원 하면서 비용을 점점 올리고 있었다. 강아지를 키울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해서 큰돈을 버려는 그 사람들의 심보가 괘씸해서 아무 말도 없이 강아지와 철재 캐리어를 들고 그곳을 나와 버렸다. 밖으로 나와 비를 맞으며 다시 택시를 탔다. 다행히 이번 택시 기사님도 강아지를 키우시는 분이라 이해해 주셨다. 부산역에 다시 도착해 저녁을 먹기로 했다. 무거운 철재 캐리어를 들고 여기저기 헤매고 다녔더니 기운이 다 빠졌다. 분식 가게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주인아저씨께 강아지가 있어서 밖에서 먹으려고 하는데 의자 두 개를 빌려도 되겠냐고 여쭸더니 그냥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먹고 가라고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편하게 앉아서 먹을 수 있었다. 미리 사 둔 기차표의 출발 시간이 한 시간이나 더 남아 있어서 매표소에서 더 빠른 기차표로 바꾸었다. 이번에도 지정석을 포기하고 열차와 열차 사이 짐칸에 실린 강아지와 가까운 곳에 앉았다. 그런데 그 기차는 알고 봤더니 다른 곳으로 둘러 가는 기차라 정차역에서 계속 일어나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기차에서 내린 후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이번 택시 기사님은 그리 친절하지 못했다. 팁도 많이 드렸지만 그다지 고마워하지도 않았다. 아무튼 강아지를 입양시키기 위해 부산까지 간다고 비 오는 날 개고생하고 여비도 십만 원이나 들었다.
부산에 간다고 죽을 고생을 하고 돌아온 날 이후, 강아지 입양 보내는 것을 거의 포기하고, 한 달간 여행 가 있는 동안 강아지를 봐줄 사람을 구하고 있는 순간에 또 강아지 전주인에게 연락이 왔다.
"강아지는 입양 보냈어요?"
그래서 아직 강아지 데리고 있고 해외 입양을 보낼 여건이 안된다고 했다.
"우리가 텍사스에 오는 사람을 알아보는 동안 우리 지인의 친구가 강아지를 임시로 맡아 줄 것 같아요."
그럼 48시간 이내에 확답을 달라고 했다. 한 달간 강아지 돌 볼 사람이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강아지 전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금요일 새벽 2시에. 나는 저녁에 화장실에 갔다가 습관대로 스마트 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던 중 새로 온 메시지를 본 것이다:
"지인의 친구가 강아지를 맡아줄 수 있다고 하네요. 언제 데리고 올 수 있어요?"
순간 화가 났다. 지난번부터 강아지가 아직도 자기 것인 양, 텍사스 오는 사람을 알아봐 달라는 둥 , 텍사스 데려 오는 비용을 알아봐 달라는 둥 , 본인의 지인이 살고 있는 도시로 데리고 오라는 둥, 너무 당당하게 요구하는 그녀가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부터 달갑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들이 와서 데려갈 수 없냐고 되물었다. 다가오는 장기간 여행 준비로 나 또한 정신없이 바쁜 시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강아지 전주인의 지인의 친구가 사는 도시까지 가려면 왕복 하루는 잡아야 하고 게다가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처음 우리가 강아지 샀을 때 준 돈의 절반 정도를 내가 그 도시까지 가는 여비로 그쪽에서 부담하고, 강아지 전주인 지인의 친구가 SRT역에서 강아지를 받아 간다면 내가 주말에 강아지를 데려갈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처음부터 여비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주말 차표는 미리 예매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강아지가 입양될 가능성을 고려해서 이미 기차표도 구매했었다. 그런데 너무도 당당하게 마치 본인의 것을 요구하듯 구는 그녀의 태도에 그만 질려 버렸다. 그렇게까지 비굴하게 강아지를 입양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안되면 말라는 심정으로 그 메시지를 보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확인하니 그녀에게서 장문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꼬일 대로 꼬인 문장으로 교통비를 지불할 수 없고 자신이 교통비까지 부담할 이유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에게 강아지를 사 갔으면서 끝까지 키우지 못해 본인에게 심적부담을 준 내 잘못이란다. 강아지 키우는 사람들이 강아지를 자식처럼 대하고 스스로를 강아지의 엄마 아빠라고 칭할 때마다 나는 사실 약간 불편하다. 내가 개새끼의 엄마라면 그럼 나는 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를 읽고 나도 모르게 욕이 나 왔다. 개 같은 X! 나는 자기더러 강아지를 데려가라고 한 적도 없고, 처음에 올렸던 입양 공고 메시지도 지워 버린 지 오래고, 더구나 부산에서 헛걸음하고 온 이후로는 강아지 돌볼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입양 보내는 것은 포기하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계속 키우기 위해서였다. 가만히 있는 사람 자꾸 귀찮게 한 것은 본인이면서, 남에게 강아지를 팔고 돈까지 받았으면 그 강아지가 어디서 어떻게 살든 신경을 쓰지 말아야지 아직도 자기 강아지 인양 주인행세를 하는 것을 본인은 못 느끼나 보다. 한국에 있는 강아지 갖고는 싶고 돈은 쓰기 싫어서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는 것도 본인이면서 말이다.
기분대로라면 장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지만 적은 글 지워 다 지워 버리고 아주 간단하게 답하고 말았다:
"그럼 없던 일로 해요!" 같은 도시 같은 직장에서 오래 있다 보니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 봤다. 그런데 정말 세상이 좁다는 것을 해마다 실감하기 때문에 되도록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상당히 애쓰고 있다. 나보다 적어도 열 살은 어린 싹수없는 젊은 여자와 신경전을 주고받아 본전도 못 챙기느니 그냥 "짖어라!"하고 두기로 했다. 아마도 우리 개의 진짜 엄마는 그 전주인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오늘도 강아지는 여느 때처럼 일어나자마자 딸의 방으로 달려가 침대에 뛰어올랐다. 부엌에서 아침 준비하다가 힐끗 쳐다보니 애는 계속 자고 있고 강아지는 자는 애 옆에 가만히 앉아 있다. 딸은 여전히 세 번 정도는 잔 소리를 해야 강아지 물과 밥을 주고 강아지 산책을 시킨다. 아직 갈 길이 너무 멀지만 아무래도 강아지는 우리가 키워야 할 것 같다. 어떻게든 강아지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