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우리 동네 중고 마트라는 웹 페이지를 알게 되었다. 가까운 지역 내에서 중고 물품을 거래할 수 있는 일종의 중고거래 앱이었다. 그렇잖아도 한국에서는 중고 거래가 어떻게 이루어지나 궁금했었는데 가끔 시내에서 구제 옷가게나 중고 책가게를 본 적은 있지만 야드세일은 축제 기간에 본 것 외에는 아주 드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는 중고 물건을 재활용품으로 버리거나 지인에게 양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나 또한 아이가 입다가 작아진 옷은 아는 사람에게 주고 이사를 할 때는 얼마 타지 않고 보관만 한 자전거와 잡다한 물건 그리고 옷가지 등을 기증했다. 우리 동네 중고 마트 앱에 가입을 하고 내가 제일 먼저 올린 품목은 화장품이다. 홈쇼핑으로 구매한 후 쓰지 않고 있는 화장품 두 세트와 인터넷 쇼핑으로 구매하고 유통기한이 촉박해 오는 화장품 세트를 같이 처분하기 위해서였다. 옷, 신발, 가방 할 것 없이 브랜드 안 따지고 아무거나 입고 신고 메는 내가 화장품은 유독 같은 제품만 사용한다. 꼭 브랜드 때문이 아니라 색상이라든지 냄새라든지 촉감이라든지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나랑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펜슬은 연필 뒤에 붙은 쇠 있는 부분까지 다 갂아 쓰고 나서야 버리고 립스틱은 밑바닥 부분까지 붓으로 긁어서 쓴다. 다른 화장품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화장품이 나와 제일 잘 맞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화장품에 적응하고 그것만 계속 쓰는 동안 화장품 회사에서는 자꾸 신 제품을 개발하고 내가 쓰고 있는 제품을 더 이상 만들지 않아서 애 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최근 수명을 다한 그 립스틱은 다행히 단품이 된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는 화장품 가게에서 더 이상 재고가 없는 상품이 되어 버렸다. 내가 이렇게 일편단심으로 특정 종류를 쓰다 보니, 다른 화장품을 구입하거나 선물 받으면 잘 안 쓰게 된다. 냄새가 너무 독하거나, 눈이 따갑거나, 색이 마음에 안 들거나 암튼 불편하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중고 마트에 유통기한이 4 개월밖에 안 남은 화장품 세트를 오천 원에 올렸더니, 여기저기서 정신없이 메시지가 와서 일일이 답 해 주기도 힘든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픽업 시간이 맞는 사람과 구매 약속을 잡았다. 다른 화장품과 마스크 팩은 누가 사겠다고 하더니 일방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한 후 힘들게 찾아갔더니 아예 약속 장소에 없었다. 시간상으로는 나와 첫 거래를 할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과의 거래는 불발되었다. 하지만 다음날 매실 통은 삼천 원에 그리고 화장품과 마스크 팩을 만원에 팔았다.
우리 동네 중고 마트를 사용하면 내가 안 쓰는 물건을 돈을 조금이라도 받고 없앨 수 있어서 좋고, 구매자를 만나기 위해서 약속 장소까지 걸어가는 동안 운동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물건이 필요한 사람과 약속을 정해서 만나면 일상의 무료함을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다. 미국에서 살 때는 이사를 하기 전에 야드 세일이나 차고 세일을 몇 번 한 적이 있었는데,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가격 흥정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하루 종일 발바닥이 아프도록 돌아다녀서 내가 번 돈이라고는 많아 봤자 200불도 안 됐지만 나는 밖에서 열심히 물건을 팔았다. 아마도 나는 장사가 적성에 맞는 듯하다. 무조건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에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헐값에 넘기기는 단점이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비우는 삶"을 살고 싶어서 시작했던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새로 올라온 물건들을 보다가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파는 대신에 물건들을 사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가끔 좋은 가격에 쓸만한 물건들이 올라왔지만 그것을 구입하기 위해서 택배비를 쓰거나 아니면 판매자가 있는 곳으로 직접 가지러 가야 하기 때문에 물건 가격 외에도 교통비나 우편비가 추가되었다. 교통비 또한 사실 만만치 않았다. 모든 판매자가 역세권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곳은 불가피하게 택시를 이용해야 했다. 특히 물건의 부피가 크거나 무게가 많이 나갈 때는 말이다. 교통비를 따로 부담하지 않으려면 운전을 해서 가야 한다. 그런데 길눈도 어둡고,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고, 자동차도 겨우 굴러만 가는 것을 타다 보니까 되도록이면 운전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한동안 중고책을 사 모았었는데, 취미라기보다는 필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택배로 몇 번 주문했다가, SF 전집이 저렴한 가격에 나왔길래 밤에 택시를 타고 갔다. 가기 전에 미리 연락을 해 두고 집 밖에서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책만 받아서 타고 갔던 택시로 바로 집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주소지로 찾아갔더니 집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할 수 없이 초인종을 눌렀는데, 한동안 대답이 없더니 한 세 번쯤 초인종을 누른 후에야 인터폰으로 어떤 아주머니가 3층으로 올라오라고 하신다. 순간 '납치당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책을 받으러 이 늦은 밤에 모르는 사람 집으로 들어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구하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왔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어서 용기를 내어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갔다. 아주머니의 얘기인즉슨 아저씨께서 책을 내놓으셨는데, 당신은 책을 팔고 싶은 의향이 없다고 하신다. 그리고 나와 거래를 하셨던 문제의 아저씨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 오셨고 아주머니더러 책을 처분하라고 하신다. 아주머니는 아저씨의 성화에 못 이겨 책을 챙기시면서 내가 정작 받으러 온 책들의 반 이상은 못 가져가게 하셨다. 그곳을 빨리 나와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주는 책만 받아서 집 밖으로 얼른 나왔다. 그 일 외에도 몇 번 이상한 일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택배비를 송금해 달라고 해 놓고, 우편으로 보내기로 한 날이 며칠 지나서 내가 사는 아파트로 찾아와 경비실에 두고 갔다. 그중에 한 사람은 지구촌 아이들이 배경으로 나오는 벽시계를 판 사람인데 내가 낮에 일하러 간 사이에 우리 집 현관문에 물건을 걸어 놓고 가셨다. 모르는 사람이 우리 집 앞까지 몰래 찾아왔었다는 것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어찌 됐건 물건을 잘 받았다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저녁 맛있게 드세요!"라고 답이 왔다. 하필 내가 그때 저녁을 먹고 있는 중이었는데, 혹시 그 사람이 보낸 벽시계에 몰카라도 있나 해서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안 돼서 또 허리에 매는 가방을 사려고 했다. 내가 찾고 있던 검은색 가죽으로 된 허리 가방이라 판매자와 거래 약속을 잡았다. 일 마치고 온 후에 저녁에 가려고 시간과 장소를 정했는데 약속 당일 그 사람이 자꾸 약속 시간과 약속 장소를 변경했다. 그러기를 한 세 번 정도 하다가 약속 시간 5분 전에 나는 이미 약속 장소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또 판매자로부터 연락이 오더니 본인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오라고 한다. 그 아파트가 어딘지 알 수 없을뿐더러 내가 몇 번씩 이해를 해 줬는데 마지막까지 또 약속 변경을 하니 약이 오를 대로 올랐다. 그래서 결국, "불쾌해서 거래를 하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빈 손으로 돌아왔다. 그 사람 때문에 그날 퇴근 후 황금 같은 두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 또 이런 일이 있었다. 한약 냄새가 나는 국산 샴푸가 있어서 그걸 사려고 약속을 잡았다. 그 판매자 역시 나를 자신이 사는 집 근처까지 찾아오게 해서 그 동네에서 제일 가까운 공동 주차장에 주차하고 판매자가 사는 동네로 걸어가 편의점 앞에서 만났다. 판매자가 샴푸의 유통기한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해서 믿고 돈과 물건을 산 후에 비 속을 잽싸게 걸어 다시 주차한 곳으로 갔다. 차 안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그런데 제조일이 2013년도이고 유통기한은 36개월이다. 2016년에 이미 유통기한이 만기 된 것이다. 유통기한이 3년이나 지난 물건을 돈을 주고 샀다고 생각하니 너무 황당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결국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몇 시간 후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속에서 물건을 되돌려 주었다. 그랬더니 돈과 함께 팩에 든 음료수를 건넨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음료수도 유통기한이 지났을 것 같아 도무지 마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중고 거래 시작한 지 육 개월도 되지 안돼서 너무도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중 간혹 매너 있고 양심적인 사람들도 만났다. 하지만 약속하고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나한테서 물건 사겠다고 예약해 두고 약속한 날에 잠수 타는 사람도 있었고, 입던 옷을 세탁도 안 하고 파는 사람도 만나 보았다. 주로 중고 한복의 경우가 그랬다. 자꾸 이런 일들이 생기니 이제 중고 거래에 자신이 없어진다. 내가 다음에 만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을 믿고 거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점점 더 깨닫게 된다. 중고 거래 시작했을 때는 안 쓰는 물건들 정리하고 비우는 삶을 살고 싶어서였지만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쓸모가 있겠다 싶은 중고 물건을 사들이고 있었고, 안타깝게도 내가 비운 것은 우리 집에 잠자고 있는 잉여 물건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을 믿는 어리석은 마음이었다. 결과적으로 중고거래는 나에게 또 하나의 인터넷 쇼핑의 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인터넷 쇼핑이나 홈쇼핑에서와는 달리 배송을 받는 편리함이 없고 물건에 대한 확신은 더더욱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