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타기

다양한 택시 기사님들

by 별똥꽃

나는 운전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예전에 일리노이 주에서 조지아 주까지 열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하루 만에 운전한 적도 있지만 운전을 즐겨서라기보다는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게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로 어디를 가도 주차 공간이 부족하거나 협소하기 때문에 집이나 직장이 아닌 다른 곳에 차를 가지고 다니면 스트레스가 너무 쌓인다. 이렇다 보니 나는 평소에 출퇴근 외에는 늘 택시를 타고 다니게 되었다. 택시를 타면 나는 주로 기사님께 먼저 인사를 하고 목적지를 말한 다음 이런저런 가벼운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서 간다. 물론 아주 무뚝뚝하신 기사님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평소에 택시 타는 횟수가 많다 보니 지난 구 년 동안 각양각색의 기사님을 만났고 또 택시와 관련된 일화도 여러 개 있다.


한 번은 택시 탄지 채 이 분도 안돼서 곧바로 내린 적이 있는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우리 가족이 탄 택시와 오른쪽 차선에서 출발하는 다른 택시가 차선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다가 두 차의 옆구리가 부딪히는 접속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멍하게 앉아 있는 우리 가족에게 우리가 타고 있던 택시의 기사님이 낮고 차분한 음성으로 "내리세요!"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좀 전에 택시를 탔던 자리로 되돌아가서 다른 택시를 타야 했다. 또 한 번은 음악에 빠지신 택시 기사님이 어둑해진 저녁에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하모니카를 불면서 모니터에 연결된 스마트 앱으로 악보를 봐 가며 곡예 운전을 하신 적도 있다. 그때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딸과 뒷좌석에서 안전벨트를 매고 왼손을 추켜올려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말이다. 그 이후로 그 아슬아슬했던 택시를 탔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청소년들의 진로 상담을 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연세 많으신 토박이 운전사를 만나 그분이 기억하는 도시의 옛 모습에 대해 자세히 들은 적도 있고, 또 전라도에서 나고 자랐지만 경상도로 장가를 오셔서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에 관해서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것을 목격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다투신다는 기사님도 계셨다. 나이 드신 여성 기사님도 여러 분 만났다. 그분들이 운전을 시작하셨을 때만 해도 "여자는 집에서 솥뚜껑 운전이나 해라!"라는 말이 보편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번은 택시 안에 최신 노래방 기계를 설치해서 특별한 서비스로 텔레비전에 나오셨다는 기사님도 계셨다. 이렇듯 기사님들마다 제각각 사연도 다르고 성격도 달랐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아침에 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 택시를 탔는데 맘이 초조해서 그날은 내가 평소보다 말수가 적었다. 얼마 못 가서 빨간 신호등에 걸려 내가 타고 있던 택시가 오른쪽 마지막 차선에서 세 번째로 정차를 했다. 그런데 앞에 있던 두 번째 차가 우회전을 하겠다며 자꾸 첫 번째 차에게 빵빵거렸다. 보다 못한 택시 기사님이 한 말씀하셨다. "직진도 되고 우회전도 되는 차선에서 앞 차가 직진을 하면 신호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지 자꾸 빵빵거려서 어쩌자는 거야!" 너무도 옳으신 말씀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본인 위주로만 생각하는 얌체 운전자들이 의외로 많다. 소셜미디어에 직장 동료가 다름과 같은 글을 올렸다: "일본에서도 살아 보고 독일에서도 살아 봤기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가면 그 나라들이 그리워지겠지만, 한국은 이기적인 운전자들 때문에 별로 그리워지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운전을 싫어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가 차로에 주정차해 놓은 차들과 깜빡이 사용 안 하는 대다수의 차들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차들에게서는 인격을 찾아볼 수가 없다. 내가 깜빡이로 차선 변경 신호를 보내면 그 차선에서 느리게 오던 차는 갑자기 속도를 내서 내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다른 차들은 깜빡이도 없이 좌우에서 내 차 앞으로 끼어들고 이렇게 십 분만 운전해도 당장 운전대를 놓고 싶어 진다. 그리고 차들이 달리는 차로에 주정차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알 수가 없다. 새벽 경기 시합 때문에 버스를 타야 하는 딸을 집합 장소에 내려주려고 차를 운전했더니 도로상 고작 백 미터 정도의 구간에 열 대도 넘는 차가 주차되어있었다. 한 번은 어떤 택시 기사님께 깜빡이 사용 안 하는 차들이며 차로에 주정차한 차들에 대해서 내 의견을 말했더니 "아줌마 같은 사람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그냥 집에만 계셔야겠어요."라고 비아냥거리셨다. 한국의 운전 문화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다수의 의견을 반영한 말씀일 거라 생각된다. 다시 그날 아침 나를 병원에 태워다 주신 그 기사님 얘기로 돌아가서 신호등에서 있었던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그리고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에 관한 다소 심도 높은 얘기를 나누었다. 택시에서 내릴 때에는 오래간만에 말이 통하는 친구와 한참 동안 대화를 한 듯 속이 시원해졌다.


이렇듯 택시 타기는 내가 자주 하고 즐겨하는 일이지만 사실 택시를 탈 때마다 어떤 택시 기사님을 만날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나에게 택시 타기는 꼭 초콜릿 상자에서 설명서 안 보고 손이 가는 대로 집어 든 초콜릿과도 같다. 아마 택시 기사님께도 상황은 마찬가지지 않을까 싶다. 어떤 손님이 타서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간혹 택시 기사님들 중에 나처럼 수다스러운 손님을 귀찮아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운전하시는데 방해가 될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그리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라서 계속 귀찮게 말을 거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밝히고 싶다. 나도 사실 침묵 속에서 행복할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택시를 타고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목적지까지 가는 것은 내가 한국에 돌아와 살면서 생긴 습관 중의 하나이다.


또 한 번은 은퇴 기념 점심 식사에 참여하기 위해 장거리 여행을 했을 때 있었던 일이다. 같은 조직 다른 지사에서 일하는 은퇴를 앞둔 동료에게 은퇴 기념 식사 제안을 했다. 원래는 은퇴를 하는 동료와 나를 포함해서 네 명이서 오붓하게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나중에 규모는 두 배가 되었다. 식사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본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장거리 여행을 해야 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하지만 식사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내심 불안했다. 코로나 창궐 이후에 그동안 한 번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전이라면 질색을 하는 나인지라 코로나 이전에도 사실 운전은 되도록 하지 않았고 특히 장거리 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은퇴 기념 점심 식사에 참여하는 그날, 일주일 전에 미리 예약해 둔 SRT를 타러 역에 가려면 먼저 택시를 타고 기차역에 가야 했다. 택시 기사님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최근 택시 불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출근 시간이라 길이 막히기 시작하니 기사님께서 불안해하셨다. "기사님, 오늘 제가 좀 일찍 나왔어요! 아직 기차 시간이 많이 남아서 천천히 가 주셔도 됩니다."라고 나는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기차역 가시는 분들은 다들 서두르시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신다. 러시아워인데도 불구하고 택시는 이내 역에 도착했다. 나는 코로나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중에 추적이 가능한 신용카드를 쓰기로 했다. 택시비에 팁을 후하게 붙여서 결재를 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기차역에 도착한 후 기차를 탔다. 기대했던 것과는 정 반대로 기차 안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빈자리는 없어 보였다. 그래도 다행히 내 옆 자리의 주인은 내 목적지의 반 정도 지점에서 합석했다. 옆에 앉은 사람은 젊은 남자였는데 중간에 놓인 팔걸이를 망설임 없이 차지했다. 게다가 그 사람한테서 참기 힘든 냄새마저 났다. 나는 간간히 손소독제를 발라 옆에서 나는 강한 냄새를 덮어야 했다. 평소에 손소독제 같은 냄새를 싫어하지만 궁여지책으로 어쩔 수 없었다. 기차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는 기차역 앞 택시 승강장으로 갔다. 그런데 내 뒤에서 오던 어떤 젊은 여자가 승강장에 먼저 도착하겠다고 달리듯 발걸음을 재촉하더니 얄밉게 먼저 가서 섰다. 한국에 온 지 만 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먼저 가려고 서두르고 다시 얼굴 볼 일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굴면서 그것이 무례하다고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주위에서 보면 외국인들이 일본이나 일본인들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최근 일본어 회화 교재를 보다가 그 이유 중의 하나를 알아낸 것 같다. 원어민 저자는 일본에서도 "실례합니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그리고 예의상 자주 쓴다는 것이다. 그 점이 영어권 사람들과 닮았다. 한국은 반면 그런 기본적인 예의가 담긴 말들에 아주 인색하기 때문에 불쾌하거나 아쉬운 경우가 종종 있다. 택시가 하나 둘 들어왔고 내 앞에 선 젊은 여자가 마지막 택시를 타고 떠난 지 얼마 안 돼서 내가 탈 택시가 도착했다. 택시를 타자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서 좋았다. 그런데 택시 기사님께서 시내가 싫어서 여기 왔는데 또 시내로 간다는 둥 지금 장거리 콜이 들어왔는데 아깝게 놓쳤다는 둥 불만 썩인 말을 계속했다. 은퇴 기념 점심 식사가 있는 식당에 도착한 후 이번에도 카드로 결제를 했다. 그런데 팁은 보태지 않고 딱 택시비만 결제했다. 손님에게 이유 없이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행과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담소를 나누고, 경치 좋은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서 음료수를 마시고, 다시 사진을 찍고, 담소를 또 나누고, 은퇴하는 동료에게 준비해 온 선물과 카드를 전달했다. 커피숍 주차장에서 한 팀과 작별 인사를 하고, 그중에 좀 더 가까운 두 사람과 다른 커피숍으로 옮겨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더 나눈 후에 지인의 차로 기차역에 갔다. 돌아오는 기차의 옆 자리는 다행히 비어 있었다. 내가 사는 도시 기차역에 도착한 후에는 그날 여행 일정의 마지막 택시를 타러 택시 승강장으로 갔다.


내가 사는 곳은 대도시여서 기차역에 택시 타는 곳이 한 군데가 아니다. 먼저 역 앞에 한 군데가 있고 역 뒤쪽에 또 있는데, 역 앞과 역 뒤쪽 모두 차선이 많아서 택시 타는 곳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다. 하필 그날 내가 간 곳은 역 뒤쪽이었고 나는 방향감각을 상실해서 어느 쪽 승강장으로 가야 우리 집 방향으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다가간 택시의 기사님은 택시 밖에서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순서대로 택시를 타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맨 앞에 있는 택시에 올랐다. 나는 택시 기사님께 목적지를 얘기했고, 다른 출구로 나오는 바람에 목적지와 방향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가볍게 날씨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나는 지인의 퇴직 기념 식사 참여하러 장거리 여행을 하고 오는 길인데 그 도시는 아주 더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떻게 이야기가 그렇게 흘렀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택시 기사님이 자신의 과거사를 나에게 털어놓았다. 예전에 잘 다니던 직장을 홧김에 그만두고 택시 운전을 처음 시작했다고 하셨다. 어느 날 야간 운전을 하던 중에 술 취한 젊은 여성을 태웠는데, 그 여인을 어떻게 성추행할까 계획을 세우고 있는 자신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자신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인간인지를 깨닫고 한동안 운전대를 놓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도박에 빠져서 전 제산 다 날리고 택시 운전을 다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다고 했다. T.M.I. 하필 내가 택시를 탄 시간은 퇴근 러시아워라 길이 막혔다. 나는 되도록이면 화제를 돌려 보려고 다른 말을 꺼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사님이 입에 거품을 물고 구정치인들 욕을 했다. 차라리 그 욕을 듣는 것이 그분의 과거사를 듣는 것보다는 나았다. 모든 여정에 끝은 있는 법. 택시가 아파트 입구에 도착한 후 나는 이번에는 카드를 쓰지 않았다. 나에 대한 정보를 그 기사에게 남기는 것이 찝찝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택시 번호도 암기해 두었다. 그리고 그 택시에서 무사히 내리고 그날 장거리 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다. 귀국 후 지난 구 년 동안 수많은 택시를 타고 수많은 택시 기사님들을 만나 보았지만, 그 택시 기사만큼 나를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든 사람은 없었다. 그 TMI 대화가 어떻게 시작된 걸까? 그런 대화를 방지하기 위해 내가 어떤 대처를 해야 했을까? 그 기사님은 너무 솔직한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요주의 인물일까? 그 택시에서 내린 후 며칠 동안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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