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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Nov 07. 2020

조금씩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나

어린 두 아이의 손을 잡고, 항공사의 불찰로 여행 가방마저 잃어버린 채 한국에 돌아온 게 어느새 십 년 전 일이다. 그간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이 있었고, 살아남기 위해 부단한 몸부림을 쳤다. 십 년 만에 연봉은 두 배정도 뛰었고, 아이들은 자라서 각각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나는 십 년 더 나이가 들었고,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코로나 또는 코비드 19 바이러스... 2020년을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전 세계적인 재앙. 연초의 모친상, 재택근무, 사회적 거리 두기, 층간 소음, 이산가족 등등... 나에게 2020년의 불행은 여러 가지 단어들로 정리된다.


가끔씩 너무 외로울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려 보려고 쓸데없는 노력을 하기도 하고, 결국 제풀에 꺾여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나는 소통을 갈망하다가도 또 갑자기 흥미를 잃어버리는 못난(모난) 성격이다. 흥미를 잃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더 이상 관심을 갖지 못한다는 뜻이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 거짓, 위선, 이기심, 아니면 나쁜 심보에 정이 떨어졌을 때 그렇게 된다.


일 시작한 지 십 년이 됐지만 나는 아직도 주말에 출근을 하거나 출근을 하지 않을 때는 일을 싸들고 올 정도로 미련하다. 돈 받고 하는 일을 프로답게 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한다. 뭐 그들이 원하는 건 나의 "열심"이 아니라 "잘" 하는 거겠지만 말이다. 아이디어와 기술이 중요시되는 업무의 성격상, 사실 뭐가 "잘"인지는 애매하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준비하고, 열심히 매사에 임하는 것으로 나름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최근에 스마트 폰에 있는 연락처를 많이 정리했다. 외사랑은 그만 두기로 했다. 내가 끊임없이 노력해야 간신히 유지되는 인간관계를 더 이상 이어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내가 이곳에 얼마나 더 머물게 될지는 모르겠다. 나의 존재 가치를 금전으로 계산받지 않아도 담담해질 그때가 되면 나는 떠날 것이다. 그때는 외로움에 많이 익숙해져서, 외로움과 절친이 돼 있을지도 모르겠다.


육아를 먼저 하고 늦게 시작한 직장생활이라 그동안 "날 새는지 모르고" 일에 열중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같은 일을 오래 함으로 인해 생기는 지루함이 나의 내면을 죽이고 있다. 나름 그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나는 해마다 일하는 방식을 바꿔가며 안 해도 될 고생을 사서 하고 있다. 그렇다고 반복적인 일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코로나로 이곳저곳 작은 사업장이 문을 닫고 있는 지금 나는 돈 잘 주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일을 한번 저질러 볼까 하는 망상을 한다. 열여덟 살 때부터 커피숍이 하고 싶었는데, 나는 차라리 술집을 차릴까라는 망상을 해 보았다. 술집을 막상 열고 나면 또 나는 이런 건방진 생각을 할 것이다: '술집을 하기에 나는 너무 고상한 사람이야.' 결국 갈팡질팡하는 이 마음이 문제다.


낮에 남편과 화상 통화를 하면서, 일단 급한 불은 껐다. 2주 휴가로 14일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한국 방문은 일단 취소시켰다. 나의 단호함에 서운해하는 남편에게 곧 둘 다 직장 그만두고 술집이나 하자라는 황당한 제안을 했다. 하지만 둘 다 안다. 내가 지금 직장을 그만두는 것보다는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 너무도 큰 희생이 될 것이란 걸. (남편의 직장은 퇴직금이 많이 걸려있다.)

 

현실 가능성은 그다지 없어 보이지만 나의 상상 속에서 일 층에 술집 또는 커피숍을 하고, 이층에서 살림을 할 수 있는 그런 건물에 큰 주차장과 온갖 정원을 꾸밀 수 있는 넓은 대지가 있는 곳에서, 매일 파티를 하듯 일을 하고 있는 나를 상상해 본다. 아마도 내가 제대로 미쳐가고 있나 보다.


아직 떠날 예정은 없지만, 나는 점점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 그리 많이 사귄 사람도 없고, 그리 서운해할 사람도 없어서 사람 정리가 사실 제일 쉽다. 그다음에는 물건 정리다. 무엇을 버려야 할까? 거의 대부분은 두고 갈 물건이다 보니 나는 되도록 부피가 크고 값나가는 물건을 사지 않으려고 한다. 최근 자동차 배터리를 갈았다. (물정 모르는 나는 물론 바가지도 제대로 썼다.) 어차피 헐값에 넘겨야 할 자동차이지만 (어쩌면 그것마저 불가능할지 모른다.) 일단은 굴러는 가야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점점 날이 추워지고 있다. 나는 또 상상한다. 아무래도 겨울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하겠다고. 그런데 따뜻한 곳으로 가면 땅이 그만큼 좁아진다. 넓은 땅에서 추위에 꼼짝도 못 하고 갇혀 지내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땅이 좀 작아도 항상 밖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곳이 나을까? 하와이로 가고 싶은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적은 글을 읽어 버렸다: 높은 물가, 비싼 집값, 비싼 전기세 등. 익히 들어온 이야기이지만 현지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 들으니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아직 떠날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데, 나는 미리 고민을 하고 있다: 하와이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 마음은 이미 하와이 해변가를 거닐고 있고, 집 옆에 만든 정원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고 있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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