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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Oct 02. 2021

네 달만에 대출금 반을 갚았다

아파트를 옮기며 부득이하게 또 대출을 받아야 했다. 대출받을 때 은행 대출 직원의 무례하고 싹수없는 태도에 자극을 받아, 무조건 일 년 안에 대출금을 갚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대출받은 지 겨우 사 개월 만에 정말로 대출 원금의 절반을 상환할 수 있었다. 이런 속도를 유지한다면 길어도 앞으로 오 개월 안에는 대출금을 모두 상환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난달에는 좀 무리를 해서 대출금을 갚기 위해 혼자 자그마치 천오백만 원을 저금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이후로는 거의 매일 거르지 않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고 게다가 이틀에 한 번 꼴로 온라인 쇼핑이나 홈쇼핑을 했다. 이렇게 헤픈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단시간 내에 대출금의 반을 상환할 수 있으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저녁에 남편에게 대출금 반을 갚았다고 말하니, <우리>가 정말 잘하고 있고, 앞으로 대출금이 없으면 가정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좋아라 했다. 게다가 차후 나의 월급에서 더 많은 금액을 예금할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덧 붙였다. 순간 열이 받았다. 내가 대출금 갚겠다고 몇 년간 고생해서 돈 모을 때는 최소한의 성의만 겨우 보이더니, 이제 와서 <우리>가 한 일이라고 떠벌리고 심지어 나의 미래의 월급까지 계산하고 있는 남편이 너무 얄미웠다. 솔직히 양심이 있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앞으로 내 월급으로 뭘 하든 신경 끄라고 쏘아붙였다.


그렇지만 남편은 퇴직하면 연금을 두둑하게 받을 수 있는 직업군에 속한다. (퇴직 후에는 아마도 대부분 남편이 받는 연금으로 생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받게 될 연금만으로도 자신이 가족 경제를 위해 충분히 공헌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남편은 평소에 경제관념이라고는 없고, 늘 본인의 만족을 위한 소비 생활에 아주 충실하다. MBA 학위가 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남편이 내리는 경제적 선택은 손해와 손실의 연속이다.  그러면 아예 말이나 말고 가만있든지, 실컷 고생해서 재산을 늘렸더니 마치 본인이 크게 기여를 한 듯 말하는 뻔뻔스러움에 가끔씩 부아가 치민다.


돈 문제로 싸우는 부부가 비단 우리 부부뿐만은 아닐 것이다. 수입이 비슷한 부부라면 가정 경제를 위한 두 사람의 기여 또한 비슷해야 맞지 않을까? 내가 속이 좁은 건지, 남편이 너무 이기적인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동안 떨어져 지낸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남편의 이기심에 대한 나의 짜증의 흔적은 여기저기 선명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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