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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Dec 05. 2021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캠핑 2

시 주말이 되었다. 금요일 남편에게 캠핑을 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렇게 반가워하지 않았다. 지난번 캠핑 때 나흘 밤 중에 사흘 밤은 텐트 속에서 자는 것을 포기해야 했으니 남편에게 캠핑은 나름 스트레스일 것이다. 토요일 낮에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와 다시 캠핑에 대해서 논의를 하던 중, 남편 왈:

매트리스를 좋은 걸 쓰면 못 할 것도 없지!

남편의 자신감을 백 프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를 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남편이 이후 창고에서 텐트와 박스를 꺼내왔다. 텐트를 세운 후 박스에서 뭔가를 꺼내 트 안에 넣었다. 그런 후 공기 주입기를 찾아오더니 펌핑을 했다. 텐트 속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남편이 설치해 둔 에어 매트리스 덕분에 텐트 천장이 한층 가깝게 느껴졌다. 에어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으니 밖에서는 지지직거리며 요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이 햄 요리를 하는 중이었다. 아들은 햄을 먹고 나머지 가족은 콘도그와 떡볶이를 먹었다. 저녁을 먹고 텐트 속에 들어온 시간은 저녁 여섯 시 밖에 안 되었지만 창밖에는 이미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텐트 속에서 잠들기 전에 의식인 영화를 보기 위해 넷플릭스에서 검색을 했다. 남편과 내가 모두 안 본 영화를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남편이 더빙된 중국 SF 영화에 관심 있어하길래 그걸 보자고 해 놓고 영화 도입부 내레이션을 자장가 삼아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내가 잠에서 깨었을 때는 이미 영화는 끝이 나고 있었다. 이번에는 텐트 밖에서 뭔가를 굽는 냄새가 났다.  딸이 야식을 만들고 있었다. 유혹을 참지 못하고 나도 상추에 참치를 싸서 두 번째 저녁을 먹었다. 후식으로 석류를 잘라서 석류알을 골라 접시에 담으니 남편과 아들이 맛있게 먹었다. 맛도 맛이지만 보석처럼 빛나는 석류알이 접시에 담기는 모습이 참 예뻤다. 석류빛과 석류 껍질 그리고 빨갛게 물든 내 손마저 모두 예뻐 보였다. 남편과 아들이 석류알을 먹을 때 나는 석류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었다.


평소 같으면 이미 잠들 시간이었지만, 주말 저녁이라 영화를 한 편 더 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한국 공포영화를 골랐다. 귀신이 나타날 때마다 나는 남편의 손을 꼭 쥐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남편의 반응이 없었다. 남편은 이미 오래전에 잠이 든 것이었다. 그 이후 몇 번의 추락사와 몇 번의 귀신 등장이 반복되고 영화는 결국 끝이 났다. 


남편은 그 이후 다음날 늦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에어 매트리스가 정말 편했나 보다. 새벽 공기가 꽤 차길래 온도를 확인해 보내 영하 1도였다. 밖에는 얼음이 어는 온도라는 거다. 생각만 해도 온 몸이 떨려 오는데, 전날 외출 중에 보았던 노숙자가 생각났다. 시간은  오후 한 시 정도였고 치과로 걸어가다가 벤치에 누워있는 그를 보았다. 때가 뭍은 가방을 베고 있는 오십 대 후반경으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고목처럼 말라 있었다. 때가 탄 남색 옷 밑으로 갈색 등산화의 윗부분이 까맣게 보였다. 돈이라도 몇 푼 건네고 갈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그런 이유로 남자의 엄숙한 잠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팬데믹 중이니 더더욱 거리두기에 신경을 써야 하는 때이다. 결국 나는 이기심으로 노숙자의 안타까움에 눈 감아 버렸지만, 오늘 아침 영하의 기온에 문득 벤치에 누워 있던 그가 생각났다.


오전 열 시경 나의 괴롭힘에 억지로 일어난 남편이 아침을 먹고 나에게 대뜸 물었다:

오늘 장 보러 가야 하는데 혼자 갔다 올까?

새 차를 뽑은 후에 남편은 돈이 없다. 차 계약금을 내고 매달 할부금을 갚느라 형편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혼자 장을 보러 가는 남편에게 내 카드를 건넸다. 부카 (부인 카드)를 들고 기분 좋게 장을 보러 가는 남편이 과연 뭘 가지고 집으로 돌아올지 기대된다. 해는 중천을 향해 가고 있는데,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중간에 잠들지 않고 같이 영화 한 편을 꼭 볼 수 있길 바란다.


전에 남편이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캠핑이 뭐가 그리 좋냐고 물었다.

1. 텐트 속이 아늑하다. 바람 한 점 없는 작은 공간 안에 있으면 마음까지 포근해진다.

2. 텐트 밖의 공간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상대적으로 아주 크게 느껴진다. 부엌에서 요리하는 소리, 세탁기 소리, 방문 여닫는 소리 등을 들으면 마치 거대한 캠핑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3. 텐트 속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고 안 해도 될 것 같다.

4. 텐트 속에서 영화를 보고 잠을 잘 때는 다른 모든 고민거리를 잊어버린다.

5. 집의 편안함과 캠핑의 낭만을 모두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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