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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Apr 26. 2022

사월의 크리스마스

오늘은 참  크리스마스 같은 날이었다. 새벽에 온 쿠팡 프레쉬는 일찍 출근하던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다 가지고 와서 냉장고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두어 시간 후에 나도 출근을 했다.


오전에는 평소와 같은 일을 했고 오후에 직원회의에 참여해서 지난번 감사 후기를 들었다. 전반적으로 좋은 이야기였다. 우리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고, 고객 만족도도 높지만, 앞으로 더 잘하기 위해 개선해야 할 점 등을 짚어 주었다. 나는 조직의 쓴 맛을 본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심이다. 그래서 회의 때는 꼭 필기도구까지 챙겨서 무조건 필기를 한다.  학교 다닐 때 이렇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감사 후기를 마치고 근속상을 받을 사람들이 호명되었다. 그중에는 30년, 20년, 15년, 10년, 5년 이런 식으로 5년 간격으로 상을 주었다. 맨 마지막으로 내 이름이 호명되었는데, 나에게는 전에 누락된 것까지 두 개를 주었다. 그깟 종이 두 장과 기념품이 뭐라고 그동안 애써서 일한 것에 대한 약간의 보상이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왔다. 집에 오니 또 택배가 두 개 와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또 택배가 두 개 더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전에 주문했던 과일이며 다른 물건들이 하필 오늘 다 도착한 것이다. 택배 박스를 열 때마다 어쩐지 꼭 크리스마스 같았다.


만약에 낮에 직장에서 상을 받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냥 택배는 의미 없는 물건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 기분이 업 되어 있으니, 작은 물건들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나 싶다.


십여 년 간 한 곳에서 일하면서 솔직히 답답하고 힘들었던 일이 왜 없었겠는가?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노력하며, 나만의 철학을 가지고 일한 것이 뿌듯하게 느껴졌다. 어쩐지 앞으로는 더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지금까지 한 대로만 한다면 말이다. 비록 세상이 나를 못 미더워하더라도 나는 나를 끝까지 책임지고 굳게 믿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월급쟁이 생활을 할지 모르지만, 이곳에  몸 담고 있는 동안은 나의 일을 열심히 하고 싶다. 그리고 만약 슬럼프를 겪고 있는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버티는 자가 이기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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