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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un 23. 2022

사춘기 허물 벗기

엄마, 콘서트에 갈래요?

딸이 먼저 말을 걸기 시작하고 한참 동안을 조잘거리기 시작한 것은 여름방학이 다 돼 갈 때쯤이었다. 그러니 아직 채 한 달도 안 되었다. 딸이 방학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나의 휴가도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딸과 함께 한 것은 최근 귀국한 딸의 친구를 집에 초대한 것이었다. 둘은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도 줄곧 우정을 키워갔고, 헤어져 지내는 동안 서로 많이 그리워했다는 걸 알기에 딸 친구의 귀국을 진심으로 환영했다. 그다음 딸과 함께 한 것은 미술 학원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미술에 관심이 많은 아이이기에 학원을 시작하면 좋겠다 싶었다. 또 봉사활동을 같이 몇 군데 다녀왔다.


사춘기와 코로나가 겹치면서 딸의 성격은 많이 달라졌다. 어릴 적에는 제법 상냥하고 사교적이고 활발한 아이였는데 사춘기 때는 그렇지 않았다. 말도 없어지고, 활동도 줄어들고 사교적이지도 않았다. 대화를 먼저 시작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질문을 하면 대답은 항상 짧았다. 집에 있을 때에는 거의 침대와 한 몸 한뜻으로 보였다. 그렇게 남처럼 한 집에서 몇 해를 보내는 동안 영영 남이 될  것 같아 불안하다가 또 어떤 때는 딸이 빨리 독립해서 더 이상 신경 쓸 일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사춘기의 늪에서 아이가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는 게 느껴진다. 생애 처음으로 돈을 받고 일하는 여름 인턴으로 선발된 이후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일하러 가고, 집에 와서 점심 먹고, 또 일터에서 오후를 보낸 후에 집에 돌아온다. 오후에 일하고 있던 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 콘서트에 갈래요?"

갑자기 무슨 콘서트냐고 물었더니 직장에서 티켓을 선물 받았다고 했다. 딸에게 같이 갈 수 있냐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주말이면 모르겠는데, 주중이라 일하고 오면 너무 피곤해서 못 갈 거 같아요."

다행히 남편이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해서 같이 콘서트에 갈 수 있겠다고 했다.


남편을 기다리며 콘서트에 갈 채비를 시작했다. 아이들과 저녁을 시켜먹고 (두 끼를 해 먹이고 오후에 기온이 급속도로 올라가서 요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콘서트에 입고 갈 드레스를 찾아보았다. 한동안 입지 않은 드레스가 몸에 꽉 끼었지만 딸은 엄마 옷이 잘 어울린다며 칭찬을 하더니  엄마가 콘서트에 가게 돼서 기쁘단다.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얼굴에서 자신이 엄마를 위해 콘서트 티켓을 구해 주었다는 자랑스러움이 역력히 보였다. 아이는 지금 돈을 받고 일을 한다는 것과 자신이 부모를 특별한 곳에 보내줄 수 있다는 것을 매우 흡족해하는 눈치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으니, 딸이 이제 슬슬 사춘기의 허물을 벗고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월급날 친구와 같이 쇼핑을 하러 갈 계획을 세웠단다. 들뜬 마음에 삼 주 후에 자기가 얼마를 받을 거라고 조잘조잘 대더니 대뜸 엄마는 월급이 얼마냐고 묻는다. 그래서  엄마 월급은 네가 버는 거에 대략 ○○배 정도 된다고 했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은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는데, 현재 엄마는 쉬면서도 자신보다 훨씬 많이 번다는 것이 놀라웠을 것이다. 딸은 엄마가 그렇게 벌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을 배우고 준비했는지 알 리 없지만 그래도 최근 들어 부쩍 성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딸의 성숙이 조금 느려 보여도 재촉하지 말고 기다려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이번 여름 인턴 기회에 대한 자신의 확신이 옳았고, 되지 않을 거란 엄마의 속단이 틀렸음을 지적했다.

그래, 딸아!
네가 맞고 엄마가 틀렸다. 속단해서 미안해!


딸이 보내준 콘서트는 훌륭했다. 한국 가곡 100주년 기념 콘서트였는데, 테너와 피아니스트 부부의 부창부수(남편의 성악과 아내의 피아노 연주)가 참 자연스럽고 좋았다. 나와 같이 콘서트에 가 준다고 그날 할 일이 밀린 남편은 거실 책상에 앉아 늦게까지 일했고 그런 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나는 글을 썼다. 아이가 사춘기를 벗어나고 있어서, 남편이 직장에서 두 사람 일을 하면서도 콘서트에 같이 가 주어서, 참 고마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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