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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Apr 30. 2019

연등회

소원 적은 연등 날리기

지난 토요일은 너무 바빴다. 아침에는 피부과에 들렀다가 시내에 가서 최근 나온 장장 세 시간짜리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데다가 내가 좋아하는 영화도 아니라서 세 시간 동안 꼼짝없이 영화관에 앉아 영화를 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연등회 행사를 하는 공원으로 갔다. 도로는 이미 막혀 있었고, 택시가 연등회 행사장 근처에서 우리를 내려 주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오는 일행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행사장으로 가는 입구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사십 분 가까이 일행을 기다리다가 인산인해를 이룬 입구를 간신히 통과해서 우리 일행을 위해 준비한 곳으로 갔다.


하지만 행사 시작 전 리허설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본 행사가 시작된 이후로는 계속된 축사와 축하 공연 등등 또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간혹 인내심이 고갈된 시민들이 연등에 불을 붙여 하늘로 날리기도 했다. 우리 일행 뒤에 앉은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불교 노래가 나올 때 <둘리>라는 만화 주제가를 불렀다. 음이 살짝 비슷하긴 했지만 너무도 불경한 행동이었다. 나는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종교 행사에서 그렇게 경솔한 행동을 하는 것은 나이를 막론하고 보기가 좋지 않았다.


지역 인사들 소개와 축사, 불교계 거물들의 소개와 축사, 지역 유명한 사찰들의 주지 스님들 소개, 그리고 각 정당의 대표까지 다 소개를 하니 행사가 끝날 때까지는 거의 네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드디어 연등에 불을 붙였다. 바람 때문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뜨거운 공기가 플라스틱에 화학 처리를 한 연등을 부풀어 오르게 하기까지는 몇 분이 걸렸다. 우리 일행이 잡고 있던 연등을 놓았더니 바람을 타고 힘겹게 하늘로 올라갔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연등도 여기저기 오르기 시작했고 하늘은 곧 수 천 개의 연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그런데 행사장 서쪽 끝에 서 있는 나무들 가지 사이사이로 및에서 불타고 있는 연등들이 끼여 있었다. 나무 사이에 낀 대부분의 연등의 불은 곧 꺼졌다. 그리고 행사장 바깥쪽에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소방차 몇 대가 벌써 와서 대기 중이었다. 나무에 걸린 연등에 혼이 빠져 구경을 하고 있는 동안 하늘로 날지 못한 연등들이 행사장에 빽빽이 모인 사람들을 향해 여기저기 돌진해 왔다. 불붙은 연등이 나를 향해 올 때는 정말 공포스러웠다.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러다 어떤 사람이 연등에 불이 붙어 화상이라도 입게 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다. 연등이 사람들은 덮은 일은 자주 있었지만 다행히 화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연등 날리기가 끝나고 연등 퍼레이드가 있었다. 행사 때문에 교통은 통제되었고, 택시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와 딸은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연등 날리기에 처음 가 봤기 때문에 신기했지만, 다음에 또 가게 된다면 행사장 중간에는 앉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날린 연등이 나에게 떨어질 위험이 없는 높은 곳에 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체 측에서도 연등 날리기 전 행사를 짧고 간단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입장료 내고 들어온 사람들에게 겨우 연등 하나 날리게 하면서 네다섯 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시민을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연등회가 정치인들 종교인들 소개하는데 중점을 두지 않고 본질에 충실하며 시민을 더 배려하는 그런 뜻깊은 행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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