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리노트 Phil Lynott 1949.8.20 – 1986.1.4
그 목소리에 빠져들기까지는 고작 몇 초도 안 걸렸다. 애달프고 구슬프다는 표현으로는 어딘가 부족했다. 문득 ‘처연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처연함은 처절함과 처참함과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어딘가 한 발짝 물러서서 스스로를 관조하는 마음 상태다. 게리 무어(Gary Moore) 음반을 통해 들었던 <Parisienne Walkways>의 첫인상이 그랬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둘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그들은 각자 활동하면서도 필요하면 함께 모이곤 했다. 우수에 잠긴 더블린 청년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Spanish Guitar> 또한 그들의 합작품이다. 게리가 솔로 뮤지션으로 명성을 쌓는 동안, 필 또한 자신의 밴드 씬 리지(Thin Lizzy)에서 전설을 만들고 있었다. 아일랜드 포크 송 <Whiskey in the Jar>의 리메이크로 성공의 조짐을 보인 밴드는 1976년 ‘Jailbreak’ 앨범으로 정점에 올라섰다. 그것은 지난했던 과거로부터의 ‘탈옥’이었다. 타이틀 곡을 비롯해 <Boys are Back in Town>과 <Cowboy Song>는 지금까지도 씬 리지를 대표하는 곡이다. 이후 발표된 몇 장의 앨범도 나름 선전했으나 ‘Jailbreak’의 영광을 재현하진 못했다. 도리어 주목받은 것은 그의 솔로 앨범이다.
신스팝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Yellow Pearl>은 그동안의 경력을 볼 때 예상치 못한 파격이었다. 이 곡의 7인치 레코드를 가게 개업 선물로 준 지인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존 사이크스(John Sykes)의 기타와 함께한 <Please Don’t Leave Me> 또한 잊을 수 없는 명곡이다. 여기서도 그의 목소리는 처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