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닷속, 햇빛조차 닿기 힘든 푸른 어둠 속에 느리고 조용한 거북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거북이는 매일 아침, 등껍질 위에 작은 소포들을 하나씩 실어 푸르른 해류를 따라 멀고 먼바다 마을로 배달을 다녔습니다.
소포 속엔 산호 목걸이, 따뜻한 편지, 말린 해초 간식...
어떤 날엔 심지어 울고 있는 불가사리의 눈물 한 방울도 있었습니다.
"꼭 필요한 이에게 전해주세요..."
그런 부탁을 받고 거북이는 묵묵히 떠났습니다.
거북이의 배달은 빠르지 않았습니다.
물살에 떠밀려 길을 잃기도 하고,
상어 떼를 만나 바위틈에 숨기도 했지요.
배달 중에 등을 다쳐 말미잘들에게 수선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거북이는 늘 다음 날 다시 바다를 헤엄쳤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고등어 택배단의 물살에 휘말려 뱅글뱅글 돌기도 했지요.
“아, 아직도 수작업 배송이세요?”
“느려도 너무 느리네요. 우리는 한 번에 백 개씩 묶어서 갑니다요~”
그들은 말하며 반짝이는 비늘과 함께 빠르게 사라집니다.
산호마을의 어떤 상점들은 더는 거북이의 배달을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느려요. 느려터졌다고요. 저희는 고등어 배송만 씁니다.”
거북이는 말없이 고개를 숙입니다.
그리고 물속에서 깊이 숨을 한 번 쉬고 조용히 돌아섭니다.
거북이의 등껍질 안에는 작은 조개 세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주 작고 여린, 그러나 거북이보다 더 소중한 존재들이었죠.
그래서 거북이는 더 무거워진 등을 매일 짊어지고 쉬지 못한 채 다시 길을 나서야 했습니다.
때론 해류가 너무 세서 목을 빼고 있던 거북이의 눈이 멀미로 흐려졌고,
가슴지느러미는 밤마다 저릿저릿 마비된 듯 아팠습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습니다.
등껍질 안에서 조개들이 잠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북이는 바다에서 가장 느리게 움직였지만
가장 먼저 일어났고,
가장 늦게 잠들었으며,
가장 오래 아팠습니다.
그가 앓는 병은 이름도 없고 약도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책임”과 “두려움”이라는 해파리 떼가
날마다 그의 머리 주변을 떠돌았지요.
그럴 때면 거북이는 바닷속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 숨을 한번 꾹 참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잠깐, 아주 잠깐만 울었습니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요.
사실 거북이의 등껍질은 원래 바위처럼 단단한 것이 아니라 마르고 약한 몸에, 산호 조각을 하나하나 붙여 만든 덧대기였습니다.
몇 년 전, 거북이는 그 등껍질을 만들기 위해
해초은행에서 바다 진주를 빌렸습니다.
갈매기 중개인은 부리로 모래를 툭툭 차며 자신만만하게 말했죠.
"곧 상어항구에서 큰 물건을 배달할 기회가 있으니, 등을 크게 만들면 부자가 될 거예요."
그렇게 말한 갈매기 중개인은 계약이 끝나자 마자 바람보다 빠르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날 이후,
등껍질은 점점 무거워졌고
바다 진주의 이자는 불어났고
해초은행의 미역 심부름꾼들은
매일 거북이의 발자국을 따라다녔습니다.
“언제 갚으실 건가요?”
“느림이 미덕이란 말, 이 바다에선 통하지 않아요.”
거북이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갑니다.
조개들이 등에 기대 잠들어 있기에 헤엄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 죄책감은 파도보다 무겁고,
그 책임감은 수심보다 깊었습니다.
거북이는 날마다 지느러미에 쥐가 나도록 일을 하며 자신이 만든 등껍질 속에서 조용히, 울지 않고, 버텨야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면 불빛이 반짝이는 산호 마을이 나옵니다.
그곳의 문어 할머니는 늘 말하죠.
“아이고, 또 오셨네요. 느려도 참 신기해요. 꼭, 와주시잖아요.”
거북이는 말이 없습니다.
다만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등껍질 위의 짐을 내려놓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소중한 것들이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아주 멀고 깊은 어둠의 틈에서 길을 잃고 말았을 때,
거북이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배달부니까.’
‘끝까지 가야 해. 누군가는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렇게 거북이는 오늘도
조용히, 조용히 바닷속을 건넙니다.
수많은 생명이 사는 바다에서
가장 느리게,
그러나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도착하는 존재.
나는,
느림이라는 이름의 배송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