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 Z Stare

젠지스테어

by 정짜리

며칠 전 카페에 갔다. 딸랑하는 문소리와 함께 들어간 카페엔 아무도 없었고 카운터에서 느리게 일어나는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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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곤 끝이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를 기대한 내가 꼰대인가 싶을 정도로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앳된 직원은 나를 빤히 쳐다만 봤다. 14년을 항공사에서 근무하며 각 잡힌 서비스인으로 살아왔던 나는 믿을 수 없는 이 광경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아이스라떼 한잔이요' 주문하곤 자리로 돌아왔다.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일단 요즘 자영업자, 사장님들 진짜 고생하겠다는 생각과 두 번째는 이것이 말로만 듣던 젠지스테어?! 요즘 유행하는 젠지스테어를 나도 드디어 당해본 건가 하는 알 수 없는 흥분감. 직장 생활하는 친구들이 새로 들어온 신입 직원들의 소위 말하는 개념 없는 행동들로 거품 물며 얘기하던 것들이 이런 뉘앙스인가 싶어 나도 드디어 이걸 겪어봤다고 말할 생각에 신나기까지 했다. 이후 커피를 마시며 다른 손님이 올 때마다 응대하는 그 직원을 보게 됐는데, 그 직원은 누구에게나 인사도, 제대로 된 대꾸도 하지 않는 공평한 사람이었다.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내가 재수 없어 보여서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서! 약 30분간 카페에 머물며 내가 본 모습으론 그 직원은 매사에 의욕이 없고 만사 귀찮아 보였지만 커피도 잘 만들고 쓰레기도 잘 치우는, 제 할 일은 제대로 하는 젊은이였다. 젠지스테어는 그냥 그들의 무드일 뿐이었다. 나같이 나이 든 사람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무드. 그뿐이었다.


가로수길에서 팬케이크 가게를 하는 친구가 있다. 한 번씩 근처에 갈 때마다 들르곤 하는데, 이십 대 손님들과 잘 어울리기도 하고 어린 알바생들과도 서슴없이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늘 신선했다. 그런 친구에게 최근에 MZ 연인이 생겼다. 무려 띠동갑이나 어린 연인이! 또래 친구들이 학부모가 되는 이 시점에 이십 대의 연인이라니, 어떤 의미에선 학부모가 되는 우리보다 더 대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우연히 그의 어린 연인을 만나기까지 했는데, 요 근래 내가 경험한 어떤 일보다도 가장 당황스럽고 흥미진진했다.


일단 그녀는 또 다른 젠지스테어로 나를 바라봤다. 이번엔 느린 소통의 젠지스테어. 수줍음이 많다던 그녀는 내가 앉은 테이블에 앉지 않고 내 뒷테이블에 앉아 나와 뒤돌아 인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내 테이블과 가까운 자리로 한 칸 한 칸 옮겼다. 그녀가 내 쪽으로 한 칸씩 자리를 옮길 때마다, 나는 우리 아이가 첫걸음마를 하던 그때를 떠올리며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에게 와주길 간절히 바랐다. 사실 나도 누구보다 낯가리는 사람이었다. 나도 수줍고 나도 어색하고 나도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보다 열댓 살이 더 많은 어른 아닌가. 그녀가 나와 등을 맞대고 앉아 대화를 해도, 얘기하다 갑자기 카운터로 숨어들어 눈만 빼꼼 내밀고 나를 쳐다봐도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진땀 빼는 40분 간의 대화를 끝으로 나는 도망치듯 카페를 나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 40분 동안 나는 지난 14년간 승무원으로 쌓아왔던 나의 사회생활 스킬을 다 쓰고 말았다. 정말 힘들었다.


젠지는 너무 어렵다. 이제 나도 어린 친구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같이 오전 수영하는 60대 어르신들과 대화하는 게 더 편안한 걸 보니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나 보다. 아니, 정확히는 나이보단 아이 낳고 기르며 주부로서 살아가는 나의 현재 삶 자체가 old age가 익숙해진 것 같다.


젊은 친구들이 그들만의 무드가 있듯이 나이 든 우리도 우리의 무드가 있다. 카페에 들어가면 '안녕하세요' 인사하기, 앞에 있는 사람 너무 빤히 보지 않기, 처음 만날 땐 서로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소개하기 등등. 쓰다 보니 의문이 든다.


설마 내가 꼰대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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