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아한 세계 Oct 11. 2022

다락방 일기장을 꺼내다

소중한 일기장의 발견

<다락방 일기장을 꺼내다>

1994년 3월, 제대를 한 뒤 전라북도 군산 소룡동에 있는 매형 댁을 찾았다.


군산시내 외곽에 있는 매형 댁은 오래된 1층짜리 양옥집이다.


큰 마당 한쪽에는 경운기가 세워져있고 부엌 문 앞에는 잔반을 해결해 주는 누렁이 강아지가 축 늘어져 있었다.


누렁이집 지붕위로 나있는 시멘트 계단을 스무 칸 정도 올라가면 옥상이 있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지평선 끝까지 논이 펼쳐졌다.


소룡동 매형 댁은 익산에 있는 원광대학교를 2학년 때까지 통학했던 곳으로 평생 잊지 못할 큰 신세를 졌던 곳이다.


큰누님은 27살의 나이에 군산으로 시집을 왔고 매형은 날 친 동생처럼 여겨주시는 참 고마운 분이시다.


난 당시 2학년 1학기에 복학을 했고 매형 댁에서 익산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다.


어느 날 군입대전에 쓰던 물품들을 정리하기 위해 다락방을 올라갔다.


다락방은 작은방 한쪽 벽에 나있는 작은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었는데 비좁고 가파른 작은 계단 십 여 개를 올라가야 했다.


매형 댁의 잡다한 물건들도 이 작은 다락방의 터줏대감들인데 평소에는 거의 햇빛을 보는 일이 없었다.


다락방의 크기는 어른 셋이 들어가 누우면 비좁을 정도였고 높이도 낮아 무릎을 꿇고 서면 머리가 천장에 닿았다. 다락방이라는 것이 따로 창이 없었기 때문에 손전등 없이는 앞을 분간하기가 힘든 곳이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이곳을 더듬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군대 가기 전에 전공서적이나 잡다한 물건들을 쌓아 놓기도 했지만 중요한 물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동안 손바닥과 무릎으로 묵은 먼지를 더듬는 순간 익숙한 것이 손에 잡혔다.


어둠속에 앉아 손전등으로 비추어보니 일기장 두 권이 손에 들어왔다.



J·J에게...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이 일기장은 내가 고등학교 때 첫사랑을 앓으며 편지 형식으로 쓴 일기장이다.


어두운 다락방에서 2년 동안이나 햇빛을 보지 못한 일기장을 꺼내와 이제 막 익어가는 봄 햇살아래 일광욕을 시켰다.


다행히 다락방이 부엌 부뚜막 위에 있는지라 습한 기운은 없어 곰팡이가 끼거나 젖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거금 만원을 들여 장만한 이 일기장은 제법 두꺼운 종이의 겉장이 감싸고 있었고 작은 자물쇠가 잠겨 있다.


자물쇠는 열쇠로 열게 돼있었지만 옷핀 같은 것으로 휘 저으면 쉽게 열리는 보안에는 취약한 일기장이다.


일기를 썼던 안쪽 종이 재질은 촉감이 매끌매끌했고 수채화 같은 단색의 그림들이 구석구석 그려져 있다.



오랜만에 볕을 받은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일기장 사이사이에 단풍잎도 있고 쪽지도 보였다.


엄지손가락 힘을 빌려 스르륵 여러 장을 한꺼번에 넘기니 책장 사이 갇혀 있던 종이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3월의 태양 아래 일기장 속의 기억이 봄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작가의 이전글 글순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