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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 세계 Oct 12. 2022

고2의 반장선거 – 공약은 반팅 주선!

소중한 기억속으로 


고등학교 때를 돌이켜보면 매일 아침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했던 것이 기억난다.

스쿨버스 안에는 아직까지 잠이 덜 깨서 덜컹거리는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어 졸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단어장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하나라도 더 외우려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당시 난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다.

스쿨버스에 타면 그 나이 또래 아이들 한 둘은 꼭 맨 뒷자리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기가 일쑤였다.

맨 뒷자리는 좌석이 높기 때문에 한자리 앞좌석에서 창문을 반쯤 열어 놓고 피우면 담배연기가 마술처럼 사라져 나갔다.

그럴 때마다 난 아이들에게 다가가 꼭 한마디를 던졌다.

“아따 이것들아 썩는다 썩어 폐 썩어..” “우리 상큼하게 등교하자~ 잉!”

“아따 그냥 니도 한 개 피라” “인생이 괴로운 고2 아니냐”

장난 반 농담 반 섞은 친구들과의 아침인사를 나누며 삼십 분쯤 떠들고 나면 스쿨버스는 언덕을 올라 산 중턱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 도착했다.

여수에서 다니던 학교는 개교한지 몇 년 안 된 인문계 학교로 난 6회 입학생이었다.

그때 당시 공부를 잘하는 학교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명문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날은 2학년 1학기가 시작 된 지 며칠 안 되는 날이었다.

학급 반장을 선출하는 날인데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누가 반장이 돼야 하는 둥 누구는 안 된다는 둥 입씨름을 벌였다.

난 창문 쪽에 붙어있는 1분단 맨 뒤에서 아이들 서너 명과 여론의 흐름을 한발 치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1학년 때부터 친했던 민호가 반장 한번 해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래? 그럼 한번 나가볼까?”

“그래 우리가 밀어줄게.. 근디 뭐 화끈한 공약을 내걸어야지 되지 안컷냐?

어떤 공약을 내걸까 한참을 고민하던 중에 영호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한말 건넸다.

“아따 호형아 반팅 어찌냐 반팅! 우리 여학생들과 반팅 한번 하자”

“반팅? 음.. 그래 좋았어.. 니 여학생들하고 끈끈하지?”

그렇게 해서 난 반장선거에 출마를 했고 ‘20대 20’ 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반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투표 결과는 독보적인 ‘1위당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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