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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우리 괜찮을까?

40. 동물과 인간의 공격성

by 쿨한거북이

사회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관련 서적을 읽고 있습니다.


인간의 공격성에 대한 Chapter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습니다.

"맹수는 싸움에서 승패가 나면 멈춘다. 동물행동학자들에 따르면, 많은 동물은 상대의 항복 신호를 인지하면 공격을 중단한다. 이는 공동체 유지와 생존을 위한 본능적 억제력이다. 반면, 인간은 이러한 자기 억제의 진화가 완성되지 않은 채 지능과 기술만 빠르게 발전시킨 존재다. 인간의 공격성은 단순히 본능적 반응이 아니라 욕망을 실현하려는 수단으로, 상대의 항복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무자비한 파괴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회심리학_정태연 외 공저 참조)

얼마 전 'KBS 동물의 왕국'에서도 그런 장면을 보았습니다.


위 내용이 인간 사회의 현실에서 벌어지는 많은 상황과 겹쳐 보이며 생각이 많아집니다.

이처럼 억제되지 않은 공격성과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참혹한 전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반복된 유혈 충돌은 모두 자신들의 이익, 정체성, 명분을 내세워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일 겁니다. 이 전쟁의 공통점은, 어느 한쪽도 완전한 승리나 화해를 원하지 않고,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집스러운 욕망의 폭주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심리는 전쟁터에만 존재하는 것을 아니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일상 정치, 특히 한국의 정치 환경 속에서도 그 그림자는 깊게 드리워져 있는 듯합니다.


한국 정치의 대표적인 문제는 책임 회피와 반대를 위한 반대, 그리고 패배를 정치적 자산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문화가 아닐까요? 선거에서 졌거나 정책 논쟁에서 밀렸을 때, 패배를 인정하고 다음을 준비하기보다는 상대를 공격하고 결과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자신의 실책을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못이 드러날수록 방어적 태도를 강화하고, 언론과 시민을 향해 프레임 전쟁을 시도하거나 상대 정당의 과오를 소환해 물타기에 나서고, ‘내가 잘못했다’는 말 대신, ‘너도 그랬다’는 말로 맞불을 놓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국 정치의 또 다른 문제는 정책 그 자체에 대한 합리적 검토보다, 정치적 손익에 따른 태도와 결정입니다. 여당이 추진하는 정책이라면 야당은 무조건 반대하고, 야당이 제안하는 법안은 정치적 계산 속에서 여당이 무시합니다. 이런 정치 구조는 국민의 삶이 아닌 당의 입지와 명분에 의해 결정됩니다.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은 흐려지고, 선명한 공격성만이 정치 생존의 수단이 되며, 이로 인해 국민은 갈라진 정쟁의 피해자가 되고, 사회는 분열과 혐오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한국 정치에서는 패배는 곧 정치 생명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것을 부정하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의 성숙성은 퇴보하고, 인간적 공격성만이 증폭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상황은 앞서 살펴본 국제 전쟁의 논리와 놀라울 만큼 유사합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에서도 모두가 정의를 말하지만, 그 정의는 결코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 정의입니다.


동물은 생존을 위해 싸우고, 생존을 위해 멈추지만, 인간은 이성과 도덕을 갖춘 존재임에도, 오히려 더 무자비하게 싸우고, 멈추기조차 자신들의 이익이 우선시됩니다.


인간은 기술적으로는 고도로 진화했지만, 윤리적, 감정적, 정치적 억제력은 그것에 한참 뒤떨어진지도 모릅니다. 진짜 성숙은 이기는 법이 아니라 정당하게 지는 법, 서로 타협하며 멈추는 법, 나의 과오를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데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요?


서울대교구 주일미사의 보편 지향기도에 자주 등장하는 기도입니다.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중략)

전쟁과 폭력을 멈추고 갈등에서 벗어나 참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중략)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하오니 그들이 자신의 이익이 아닌 오직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시고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돕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하소서.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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