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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조각

01. 폭우와 어머니

by 쿨한거북이

이번 여름에도 어김없이 폭우로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십니다.

기후변화로 이제는 극한폭우라는 표현도 등장했더군요.

집이나 삶의 터전이 물에 잠기고,

휘몰아치는 물살에 살림살이를 속절없이 휩쓸려 버린 수재민은 물론,

늘 人災와 겹쳐 보이는 이런 물난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안타까운 일까지,,,

재난을 겪으셨을 모든 분들,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시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비가 오고, 재난방송에서 피해상황을 전하면, 저의 어머니는 예전 기억을 떠올리시고 늘 우리에게 추억을 말씀하십니다. 저에게는 몇 가지 이미지로만 각인되어 있는 우리 집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3살 정도 되었을 때, 서울에 처음으로 집을 사셨고, 그 집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며칠 밤을 잠도 못 주무실 정도였다고, 아버지와 방에 누워 어떻게 이런 집을 우리 형편에 살 수 있었을까라며 모든 것에 감사드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해 여름 한 철을 지내면서 그 모든 감사함이 후회와 자책으로 돌변되셨답니다. 비만 조금 많이 오면 3거리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마당으로 온 동네의 빗물이 모이는 겁니다.

저에게 남아 있는 몇 가지 기억은 장독대와 요강이 가득 불어난 빗물에 떠다니고, 마루까지 찰랑찰랑 빗물이 차오르면 긴 한숨과 하늘을 원망하시던 어머니의 표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비만 오면 일터에서 어떻게 일을 했는지도 모르게 안절부절 못하시다가 부리나케 집에 오셔서 다행히 빗물이 빠진 마당과 집안을 정리해야 하는 곤욕을 치르셔야 했답니다.

그제야 그 가격으로 넓고 멀쩡한 집을 살 수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하셨죠.


그 다음 집을 구매하실 때는 지대 높은 곳 중에서도 골묵 가운데 가장 높은 집을 사셨다고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까지 지낸 추억이 많은 집입니다. 하지만 그곳도 빗물 때문에 고생하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잠결에 무엇인가 쿵하는 무너지는 소리에 놀라 부엌 옆에 자리 잡은 마루밑 지하실 창고에 가보니 쌓아놓은 연탄이 벽에서 흘러 나온 물에 무너져 난리가 난 것이었습니다. 이사한 첫 가을비에 겨울나기 연탄이 쓸모없게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날이 밝자 시메트 한 포대기를 사 오셔서 물이 흘러내리는 지하실 벽의 틈을 장갑도 없이 메꾸는 작업을 직접 해내셨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승리한 전투를 회생하시는 듯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그 많은 삶의 이야기 중에 한 페이지로 남아있는 거겠죠.


지금도 저희 부모님의 고생과 상황보다 폭우를 포함한 수많은 자연재해로 더 큰 고통과 상실감에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지원, 그리고 또다시 일어나시려는 의지로 얼른 일상이 회복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오늘도 많은 비가 예보된 지역이 있습니다.

언제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요?

우리, 괜찮을까요?


매주 금요일에 한 편의 글을 올려보려는 제 의지를 이번에는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오늘 올릴 수 있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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