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80년 5월
내 기억으로는 업무차 혹은 여행으로도 광주를 직접 방문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대학시절 무전여행이랍시고, 단짝친구와 둘이서 호기롭게 야간 기차와 두 다리로만 걸어서 전국을 돌아다니던 때에 목포를 갔던 기억은 있지만 광주는 기억에 없다.
한 달전쯤 박대표가 조선대 강의를 요청했을 때, 비로소 광주와 인연이 닿았다.
1980년 5월,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었던 그 당시, TV속에 비친 광주는 군인과 시민이 서로 총부리로 대치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난리가 난 상황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벌어진 참혹한 진실을 텔레비전 화면으로만 보았고 왜곡된 보도, 편집된 장면, 그리고 정권이 만들어낸 거짓말이 가득한 뉴스에 이러다가 나라가 어떻게 되는 것 아니가?라는 걱정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수많은 희생과, 피로 지켜낸 민주주의가 있었다는 것을 이젠 모두가 안다.
45년이 지난 2025년 8월, 나는 CDS(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양성과정) 강의를 위해 광주를 방문할 기회 왔다. 조선대학교의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빅데이터, 알고리즘과 AI와 같은 주제 등으로 이야기하면서도 내 마음 한편에는 광주에 와 있다는 사실과 꼭 가봐야 할 곳에 대한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나름 최선을 다한 강의 준비로 짬을 내지 못해서 일정을 끝내고서야 늦게, 나는 발길을 전일빌딩으로 옮겼다.
민주광장의 화려한 분수와 음악소리와는 달리 저녁시간의 전일빌딩 245는 조용했다. 빌딩문은 열려있어 1층 공간과 루프탑은 둘러볼 수 있었지만, 전시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건물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묘한 전율이 느껴졌다. 1층벽의 사진들과 건물 기둥에 재연해 놓은 총탄 자국들, 그것은 그 당시 광주의 시간으로의 나를 잇는 무엇이었다. 나는 손끝으로 차가운 벽을 쓸어보았다. 같은 장소, 다른 시간, 그리고 역사라는 것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도심의 불빛이 유난히 따뜻해 보였다.
광주에서 흘린 피는 민중이 지켜낸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었다.
그 뿌리는 2024년에도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믿기 힘든 일이었다. 계엄령 그리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 수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계엄령에 맞서 또 한 번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지켜내야 하는 소중한 것이다.
일주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이렇게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에 감사드립니다.
연재하시는, 꾸준히 글을 쓰시는 모든 작가님들을 다시한번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