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세대

by 여행자 제오키

A.T. 641년, 오디세우스 호(號) 지구로부터의 거리: 약 6.21광년

오디세우스 호의 만성 질환은 잠시 가라앉은 듯 보였다. 그 사건 이후 아르코스는 마지못해 제한된 부품을 공급했고 더 가든의 공기는 다시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어른들의 차가운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홀로그램 너머로 오가는 날 선 화살들은 함선에 냉기를 불어넣었고 두 세계 사이의 보이지 않던 균열은 살을 에는 빙벽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빙벽 아래 가장 깊은 곳, 두 아이의 마음속에서 분열을 시작한 증오의 암세포는 이제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것과는 다르게 더 단단하고 치명적인 무언가로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다.


******

레아 아르코스는 더 가든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완벽하게 분석한 보고서를 들고 아버지의 집무실로 향했다.홀로그램 스크린 너머로 제시안의 시선은 온통 유령 신호의 분석 그래프에 쏠려 있었다.


“사령관님, 보고 드립니다."


레아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한층 더 낮고 단단해져 있었다.


"더 가든에서 수집한 데이터 분석 결과입니다. 생명유지 시스템의 비효율은 단순한 노후화가 아닙니다. 그들의 생활 방식 자체가 함선 전체의 장기 생존 확률을 저해하는 시스템의 암입니다. 더 강력한 통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시안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피로에 잠겨 있었다.


“통제는 단순한 압제가 아니다, 레아… 시스템은 균형을 통해 안정성을 유지한다."


그는 딸의 급진적인 주장을 원론적으로 타이르며 손짓으로 레아의 보고서를 홀로그램 한쪽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마치 성가신 팝업창을 닫듯이. 그는 다시 화면 속의 미스터리로 빠져 들었다.


레아는 아버지의 대답에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 그녀의 심장은 차갑게 식었다. 보고서가 치워지는 순간, 자신을 둘러싼 브릿지의 서늘한 공기가 오히려 위안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아버지가 과거의 낡은 계약과 아일리아에 대한 미련 때문에 최적의 해답을 외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아버지가 균형이라는 비효율에 발목 잡혀 있다면, 자신이 직접 완벽한 통제를 증명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는 과거의 설계자일 뿐, 미래의 지휘자는 자신이 되어야 했다.


******

라이샌더 시데리스의 세계는 엘라라의 희미해져 가는 숨소리 안에 갇혀 있었다. 그녀의 호흡기 질환은 단순한 병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무것도 손쓸 수 없는 더 가든 전체의 무력함을 상징하는 상처였다.


해결책은 명확했다. 더 코어의 의료 터미널에서만 생성할 수 있는 특정 나노봇 치료제. 유일한 선택지는 저 벽 너머에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어머니의 대화를 기다릴 수 없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서 위험한 계획을 세웠다. 더 코어에 잠입하여 치료제를 훔쳐오는 것. 소년의 무모하고 영웅적인 시도였다.



"침입자 경고. B-4 구역, 환기 시스템."


헥사의 경고에 카이렌은 하던 일을 멈췄다. 그는 즉시 보안팀을 이끌고 해당 좌표로 향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시데리스의 침입 시도인가, 아니면 유령인가.

그가 마주한 것은 테러리스트도 유령도 아니었다. 환풍구 덮개를 힘겹게 열고 나온 먼지투성이의 소년이었다.

그는 카이렌과 마주치자 겁에 질린 올빼미가 되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소년의 눈에는 오직 친구를 구하려는 절박함과 두려움만이 담겨 있었다.


카이렌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지난 번 더 가든에서 보았던 아일리아 시데리스의 아들. 저 눈빛은… 오래 전 지구에서 자신이 보았던 수많은 얼굴들을 떠올리게 했다.


카이렌은 제시안의 방식이 옳다고 믿었지만 그 방식이 무엇을 파괴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소년을 체포하면 아일리아와의 공식적인 외교 문제로 비화될 것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경멸도, 연민도 아닌 깊은 피로감이 담겨 있었다.


“얘야,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니야. 돌아가라."


라이샌더에게 이것은 패배보다 더 끔찍한 굴욕이었다. 그는 자신이 아르코스에게 위협조차 되지 않는, 그저 동정의 대상인 어린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빈손으로 돌아온 라이샌더가 마주한 것은, 아픈 엘라라의 곁에서 노래를 부르며 그녀의 고통을 위로하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세계가 무너졌다. 그녀의 맑은 목소리가 잠시나마 고통을 잊게 하겠지만, 그 모든 것이 거대한 기만처럼 보였다.


그는 차가운 현실의 벽 앞에서 자신의 모든 용기가 어떻게 무력화되었는지를 체험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숭고한 이상이라는, 그 벽을 결코 넘을 수 없는 무기만을 들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절규했다. 그의 분노는 이제 단순한 항의가 아니었다.


"노래로는 그들의 벽을 넘을 수 없어요! 제가… 봤어요! 그들은 우리를 동정할 뿐, 두려워하지 않아요! 어머니의 기도가 저 아이를 고칠 수 있냐고요! 우리가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으면 우리의 의미는 그들의 자비에 구걸해야 하는 값싼 동냥이 될 뿐이에요!"


아일리아는 갑작스런 아들의 분노에 적잖이 놀랐지만 그 마음을 이해했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그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 오랫동안 신념을 지켜온 지도자의 깊은 고뇌가 묻어 있었다.


“우리가 그들처럼 무기를 들면,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 자신을 증명하지? 라이샌더, 우리의 가장 큰 힘은 폭력이 아니라, 폭력 앞에서도 우리의 노래을 잃지 않는 마음이란다. 그것마저 잃으면 우리는 정말 모든 것을 잃는 거야."


라이샌더는 어머니의 품속에서 위로가 아닌 더 깊은 무력감과 절망을 느꼈다.


그는 깨달았다. 어머니는 이 유리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자신은 이 유리가 깨지지 않도록 그것을 감쌀 강철이 되어야만 한다고.


노래를 지키기 위해서는 노래가 아닌 다른 것이 필요했다.


******

이른 아침, 라이샌더는 오르사를 찾아갔다. 그녀는 예상치 못한 방문임에도 그를 따뜻이 맞이하였다. 그의 눈에서 20년 전 남편을 잃었던 자신의 모습이 비춰 보였다. 위험하고, 길들여지지 않은 젊음의 불꽃.


라이샌더와 오르사는 탁자에 마주 앉아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던 묵직한 감정들을 조심스레 그녀에게 풀어냈다.


그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오르사의 따뜻했던 눈빛은 서서히 차가운 현실주의자의 그것으로 변해갔다. 그녀는 라이샌더의 분노에서 과거의 비극뿐만 아니라, 미래에 닥쳐올 피할 수 없는 폭력을 예견했다. 그녀는 이 아이를 막을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결심했다.


“좋아. 하지만 이건 전쟁을 위한 게 아니다. 너 안의 그 주체 못 할 분노가 엉뚱한 곳에서 터져 우리 모두를 죽이기 전에, 그것을 통제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싸우는 법이 아니라, 살아남는 법이다. 명심해."


며칠 후 늦은 밤, 함선의 가장 깊고 버려진 화물칸에 열 명 남짓의 젊은이들이 모였다. 더 가든의 첫 번째 민병대, 수호자들(The Guardians)의 첫 훈련은 그렇게, 함성을 지르는 법이 아닌 침묵하는 법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

시뮬레이션 룸의 공기는 언제나처럼 서늘했고, 오직 레아 아르코스의 뇌파와 동기화된 데이터의 흐름만이 푸른 빛을 내며 허공을 유영했다.


그녀는 더 이상 견습생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시스템을 가장 완벽하게 이해하고, 가장 무자비하게 활용하는 최고의 플레이어였다.


그녀는 더 가든의 시스템 오류를 재현하고,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제거하는 코드를 짜는 실험을 비밀리에 진행했다. 놀이는 더 이상 퍼즐 맞추기가 아니라, 가상의 적을 상대로 한 워게임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개발한 코드를 이용해 더 가든의 비효율적인 수경재배 시스템에 연결된 영양 공급 장치 하나를 원격으로 최적화했다.


그 결과, 특정 구역의 꽃 몇 송이가 시들었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사소한 변화. 하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의 의지로 버그를 제거한 첫 번째 성공적인 외과수술이었다.


레아는 자신의 데이터패드에 뜬 'System Optimized'라는 메시지를 보며 차가운 만족감을 느꼈다.



******

자원 교환 구역. 한 아르코스 병사가 시끄럽게 떠드는 시데리스 아이들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때, 라이샌더가 아이들 앞으로 나섰다. 그는 병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들아, 더 크게 노래 부르자. 저분은 우리 노래가 마음에 드셨나 봐."


아이들의 노래 소리가 커지자 병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가 무언가 더 말하려는 순간, 수호자들이 약속된 듯이 나타나 그와 라이샌더 사이에 섰다. 그들은 병사를 막지 않았다. 그저 라이샌더를 호위하는 대형을 갖추었을 뿐이다.


병사는 상황을 파악했다. 이것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명백한 계산된 도발이었다. 여기서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는 것은 아르코스 선제공격이라는 오명만 남길 행동이 될 터였다. 그는 분노를 억누르며 몸을 돌렸다.


라이샌더는 그의 뒷모습에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아이들에게 하는 말처럼, 그러나 병사에게 들리도록.


“봤지? 노래는 힘이 있단다. 우리가 함께 부르면 어떤 소음도 우리를 막을 수 없어."


기술자가 사라진 후, 수호자 중 한 명이 나지막이 물었다.


“라이샌더, 만약 저 자가 물러나지 않았다면, 우린 어떻게 할 생각이었지?"


라이샌더는 대답 대신, 싸늘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노래를 자신의 힘으로 지켜냈다는 비틀린 자부심을 느꼈다.



******

더 코어의 시뮬레이션 룸에서, 레아는 차가운 스크린의 빛을 받으며 다음 수술 대상을 물색했다.


더 가든의 잊힌 화물칸에서, 라이샌더와 동료들은 또 다른 수호를 맹세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부모의 그늘에 숨은 아이들이 아니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전쟁을 계승하고 그것을 더 위험한 차원으로 끌어올릴 준비를 마친 두 명의 젊은 전사가 되었다.

이전 11화균열의 속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