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젤드!”
에드윈이 손을 흔들었다.
멀리 서 있는 그를 발견한 에젤드가 걸음을 재촉하여 달리듯 걷기 시작하자 에드윈이 소리쳤다.
“뛰지 마요!”
그의 말에 에젤드는 다시 속도를 늦추어 그를 향해 걸었고, 에드윈도 역시 잉그램을 끌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좋은 아침이에요.”
가까워진 거리에서 서로 맞닿았을 때 에드윈이 인사를 건넸다.
“저를 기다리신 겁니까?”
밝은 표정의 에드윈과는 다르게, 에젤드가 수심에 찬 얼굴로 물었다. 에드윈은 대수롭지 않은 듯 답했다.
“네, 기다렸어요. 숲길에서 말을 태워 주기로 했잖아요.”
“그렇지만, 제가 언제 올 줄 알고…….”
“뭐, 이때쯤 오겠지 하고 나왔어요. 염려 말아요. 알다시피 숲이 워낙 아름다워서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시간이 훌쩍 가니까. 그나저나, 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잘 지냈습니다. 전하께서는 안녕하셨습니까?”
말로는 에드윈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에젤드의 시선이 자꾸만 옆에 있는 잉그램에게로 돌아가자, 에드윈도 그녀를 따라 잉그램을 바라보았다. 그는 씨익 웃은 뒤 말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요. 내가 가르쳐 줄게요. 말 타는 법.”
“네?”
“당신은 그림을 그려 주고, 나는 승마를 가르쳐 주고. 괜찮은 생각이지 않아요?”
“어…….”
“편하게 다니게 해 주고 싶은데, 그렇다고 내가 매번 같이 타면 이 녀석이 힘들 거 아니에요. 그런데 당신이 말 타는 법을 배우면 내가 같이 타 줄 필요가 없으니까.”
“저는 말을 타는데, 전하께서는 걸으시면…….”
“나도 타요. 마중 나올 때 한 번, 배웅하고 나서 한 번.”
엉뚱하면서도 호쾌한 에드윈의 대답에 에젤드는 말을 잃었고, 에드윈은 그 모습을 재미있어하며 덧붙였다.
“당신은 성에 올 때 한 번, 집에 돌아갈 때 한 번, 그렇게 타요. 우리 오며 가며 반반씩 탑시다.”
그러고 나서 잉그램의 옆으로 가 안장을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받침 없이 탈 수 있겠어요?”
에젤드는 말 가까이로 조금 더 다가섰지만 선뜻 등자에 발을 올리지는 못했다.
“해 봐요. 할 수 있어요.”
에드윈의 북돋움에 힘입어 에젤드는 다리를 들어 등자에 왼쪽 발을 올렸다. 그리고 힘을 주며 몸을 들어 올렸는데,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는지 말 등 위에 배도 대지 못하고 그만 툭 떨어져 버렸다.
“괜찮아, 한 번 더 해 봐요.”
에드윈은 등자에 발을 올리는 것부터 하나하나의 동작을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고, 에젤드는 그의 설명에 따라 양손으로 올바른 곳을 잡은 뒤 호흡을 가다듬고 힘을 힘껏 주며 몸을 곧게 들어 올렸다. 드디어 그녀가 오른쪽 다리를 반대편으로 넘겨 말 등 위에 올라타는 데 성공하자 에드윈은 열렬히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바로 그거예요! 아주 잘했어요!”
혼자 힘으로 말 위에 올랐다는 뿌듯함이 차올랐는지 에젤드의 얼굴도 퍽 상기되어 보였다.
“지난번에 보니 자세가 이미 훌륭하던데요. 지금도 아주 좋아요. 그렇게 허리를 곧게 펴고, 이제 하나씩 배워 봅시다. 내가 친절한 선생이 되어 볼게요.”
“이제 왼쪽 발을 빼고, 그렇지. 그렇게 미끄러지듯이.”
에젤드는 안장에 배를 댄 채 왼쪽 발을 등자에서 뺀 뒤 스르르 미끄러져 말 등에서 내려왔다.
에드윈이 잉그램의 목덜미를 툭툭툭 치며 말했다.
“잘했다고 칭찬해 줘요. 이렇게.”
에젤드는 그를 따라서 아직은 어색한 손길로 말의 목을 툭툭 쳐 주었다.
에드윈은 이제 에젤드에게로 시선을 옮겨 대견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두 팔을 뻗어 손뼉을 쳤다.
“당신은 아주 좋은 학생이에요. 차분히 잘 따라오네요. 첫 수업이 어땠어요? 솔직하게 말해 봐요.”
“솔직히…… 조금 무서웠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습니다. 제 수고를 덜려다가 왕자님께 수고를 더해 드릴까 염려가 될 뿐이에요.”
기분이 좋아진 에드윈은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당신이 잘 배우니까 나도 재미있어요. 자, 나는 잉그램을 귀가시키고 들어갈게요. 먼저 들어가요.”
마구간 안으로 들어간 에드윈을 등지고 에젤드는 공방을 향해 사풋사풋 걸었다. 한껏 가벼워진 자신의 발뒤꿈치가 땅에 닿을 새도 없이 둥둥 떠오르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로.
달카닥, 문이 열렸다. 공방으로 들어선 에젤드는 두 번째로 맡는 흙 내음이 벌써부터 반가워진 것인지 설레는 표정으로 두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다시 눈을 뜨고 공방을 한 번 더 새로이 둘러본 그녀는 지난주에 자신이 일하던 작업대 앞으로 살며시 다가가 의자를 빼내어 앉았다. 자리에 앉아 작업대 위를 찬찬히 훑어보니, 채색 작업 중이었던 도자기 판, 그리고 안료 함과 물감을 만들 재료들까지 미리 꺼내어져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못 보던 안료 함 하나가 더 놓여 있었다. 에젤드는 처음 보는 안료 함을 끌어당겨 매우 흥미로운 눈빛으로 색들을 살펴보았다. 그중 몇 가지 안료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쓸어 보며 주의 깊이 관찰해 보기도 했다. 원했던 그 색깔을 찾은 것인지, 그녀는 고심 끝에 선택한 안료를 유발에 넣고 막자를 집어 들었다.
이제 막 바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굵은 광물 알갱이들이 으깨지기 시작했을 그때, 무심코 눈을 들어 앞을 본 에젤드의 손이 우뚝 멎었다. 에젤드는 곧 막자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러고는 창문 밑에 놓인 진열대 앞으로 무언가에 이끌리듯 다가가 섰다. 진열대 맨 꼭대기 단의 한가운데에는 깨져서 절반이 날아가 빈 속을 훤히 보이고 있는 작은 항아리와, 그 항아리를 받침대 삼아 그 안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깨진 도자기 조각이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볼록한 도자기 조각 위에 그려진 잉그램의 우스꽝스러운 그 얼굴을 다시 마주한 에젤드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안장과 등자, 굴레까지 모두 벗겨 벽에 건 뒤 잉그램의 먹이를 챙겨 주고 나서, 에드윈은 마구간을 나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공방을 향해 몇 발짝을 걷다가, 이내 우뚝 멈추어 섰다. 에드윈이 바라보는 공방의 창문 너머에는 새벽이슬처럼 맑은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에젤드가 있었다. 깨진 항아리 앞에 서서 그 안의 것을 손가락으로 슬며시 만져 보며 웃음 짓는 그녀의 모습에, 에드윈의 눈가와 입가에도 따뜻한 미소가 햇살처럼 번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