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임은 쾌활하고 성실하며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 얼핏 보면 홍콩배우 '양조위'를 닮았는데 선한 인상의 사내다. 그는 내 상사로 금형프레스를 능숙하게 다루는 숙련공이었다. 그는 좀처럼 화내는 법 없는 유순한 사람이지만 욕은 참 맛깔나게 할 줄 알았다. 나는 그에게 딱 한번 뒤통수를 맞은(말 그대로 후두부를 손으로)적 있었는데, 프레스를 작동시키며 졸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억척스럽지만 익살스러운 동료와, 등 떠밀고도 다시 안아주는 가족이 있었다. 그는 기계를 만지다 전기에 감전됐지만 같은 부서 D군의 발길질로 그 자리에서 부활했고, 고된 야근의 나날 속에서도 아침마다 출근카드와 함께 부활했다. 회사 철문이 열리고 석영관 히터가 아침햇살처럼 밝아오면 이주임은 탕비실로 출근한다. 작은 종이컵에 끓인 물을 절반쯤 붓고 커피믹스 두 개를 넣어 커피봉지로 힘차게 젓는다. 커피의 입자는 아침 안개를 타고 내 코에도 닿는다.
그렇게 아침을 열고 굉음과 진동의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내고 찾아온 아침, 이주임과 D군이 보이지 않는다. 간밤 야근에서의 사고로 이주임은 손가락 세 개를 잃었고, D군은 금형 사이에 낀 손가락의 뼈와 살을 육각렌치로 긁어내고 세척하느라 밤을 지새웠다고 차장이 알려줬다. 나는 그 110톤 프레스를 작동시키며 "이주임이 커피를 못 마셨나 보군" 이라고 추리를 펼쳤지만, 그날 커피박스가 비어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주임은 세 달이 지나서야 번쩍이는 새 뉴EF소나타를 끌고 회사로 돌아왔다.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는 남아있지만 동작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는 그 두 손가락으로 커피믹스 두 개를 한잔에 타마셨는데, 그래서인지 더는 손가락을 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