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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창 Feb 14. 2023

<고장난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남자에 대한 고찰>

식탁 소설집 3


 아직 면허를 따기에는 이른 나이임에도, 나는 종종 거리를 지나는 차들이 어떻게 교행 하고, 교차로 신호를 빠져나가고, 골목과 건물 사이를 지나다니는지를 시간을 들여 관찰하곤 했었다.
그 무렵 내 친구들은 그런 일에 시간을 쓰는 나를 보면서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쓰는구먼."
하고, 걱정 섞인 비아냥을 했었다.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운전면허증을 획득했고 차를 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운전석에 앉았을 때 내가 모르는 것 이라곤 내 몸을 어떻게 이 기계와 어울리게 만드느냐 정도였다. 아주 오랫동안의 관찰 덕분에 나는 빠른 속도로 운전실력을 늘릴 수 있었다. 아니 실력을 늘렸다기보다는 기계를 다루는 실력을 키웠다 정도가 맞겠다. 이런 걸 마인드 트레이닝이라고 쉬이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관찰에서 기인한 것이다. 단지 학습과 가상의 추론, 예측이나 가정에 의한 것이 아니다.

나는 종종 어떤 것들을 관찰하는 일에 온전히 몰두하느라 인간이라면 응당 해야 할 것들을 등한시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인간관계, 경제활동, 르세라핌 펜클럽 활동 따위의 것들 말이다. 때로는 그 등한시해왔던 것들에 대해서 관찰하고 생각하는 짓도 하기는 하지만. 내가 시간을 들여 관찰하는 것은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삶에 전혀 무관한 것들이 아니라는 게 나의 주장이다.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가 어떻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들어다 보던 때가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일종의 수행을 하던 중이었는데, 과연 하루에 정해진 일은 얼마만큼의 총량을 갖고 있는지, 나는 과연 그 일들의 끝을 볼 수 있는지,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하루 안에 일을 끝낸다는 게 가능한가에 대한 다방면적인 탐구 같은 거였다. 한 번이라도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듯이 그런 끝은 없다. 어떤 식으로든 일은 일을 부르고, 일이 생기고, 일을 치르고, 일이 엇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그 무렵 번번이 '하루일과 완전정복' 을 실패한 이유로 꼽은 것은 한 명의 직원 때문이었다. 그를 관찰하는 것 때문에 내 일과에 대한 탐구는 번번이 차선으로 밀려났다.

 그의 업무능력에 딱히 토를 달 생각으로 시작하는 말은 아니다. 인류의 생존을 책임질 우주개발 프로젝트나 발모제 개발 연구 같은 거창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같은 공간 안에서 일을 나눠서 하고 있다면 동료의 실력을 저울질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는 항상 구멍이 뚫려있는 하늘하늘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찬 폭풍우에도 쉽게 상처받거나 날아가지 않는 바닷가 슈퍼마켓 처마에 달린 호루 같달까? 쉽게 지치지도 않고, 퇴색되었다고 말하기가 어렵게도 이미 모든 부분에서 퇴색되어 빛나는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그런 사람. 그렇지만 흔들리는 탁상을 받치는 작은 쐐기처럼 없으면 꼭 회사가 덜컥거릴 정도로 티가 날만한 그런 사람.
 그는 항상 자신의 일을 정확한 시간 안에 해냈다. 조금도 늦게 끝내는 법이 없었다. 실로 대단한 능력이었다. 그 부분에서 나는 그처럼 완벽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적어도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주어진 일을 주어진 시간보다 조금 일찍 끝내는 것이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 연유로 나는 항상 제시간에 일을 끝마치는 그의 놀라운 업무능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먼저 그의 출근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예상하겠지만 정시 출근이다. 이게 첫 번째 미스터리다. 정시출근이야 말로 그의 행동 중에서 최고로 기이한 것이라는 데에는 어떤 놀라움을 뜻하는 형용사를 가져다 붙여도 모자랄 것이다. 제 아무리 지하철과 시내버스라 할지라도, 적어도 일 년에 한두 번은 고장이나 예측하기 힘든 상황으로 인해 연착하기 마련이다. 차량출근의 경우는 더욱 많은 변수가 있을 것이고. 도보출근이라 한다면 그것도 역시나 많은 변수가 있을 것이다. 아니 텔리포트를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인간인 이상 독감이나 늦잠 같은 일로 심하게는 결근, 적게는 5-10분 정도 출근이 늦어지기 마련인데, 그는 언제나 정시에 출근했다. 나는 그가 회사 언저리에 차를 세워두고 기다렸다가 정확히 출근카드를 찍기 5분 전에 움직이는 게 아닌지에 대한 합리적 의심 끝에, 회사 주변을 몇 번이고 빙빙 돌다가 지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의 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8시 55분에 회사 현관을 넘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아직 체감을 못하는 사람을 위해 한 일화를 덧붙이자면, 그를 관찰하기 시작한 지 5개월이 지날 무렵이었던 지난 1월 밤새 30 cm 가까이 폭설이 쏟아졌던 날에도 그는 정확하게 8시 55분에 회사 현관을 넘었다. 당시에 나는 차량 대신에 지하철과 도보를 이용하여 평소보다 20여분 일찍 회사에 도착해 있었는데, 그날 자동차로 출근한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나는 그날 그의 차가 좌우로 흔들거리며 회사현관을 넘는 모습을 보고는 일종의 영적체험을 느꼈다.

 일의 첫 단추인 출근모습만 보더라도 나머지 모습은 쉽게 예측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걸 실제로 구현하는 것이 얼마만큼 힘든 것인지는 예측이나 상상 많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는 1시간 안에 마쳐야 할 일이라면 절대로 한 시간을 넘기는 일도 일찍 끝내는 일도 없었다. 회사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는 주로 바쁘게 눈과 손을 움직였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도저히 한 시간 안에 해치우기 힘들어 보이는 일을 거뜬하게 해내는 그의 모습이 존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존경이 환멸과 공포로 바뀌는 순간이 있으니, 그 역시 반대의 경우다. 초보자라도 족히 20분이면 끝마치는 게 가능한 업무인데도, 그는 한 시간이 주어지면 그 일을 한 시간 동안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그가 전혀 늦장을 부린다가나 딴청을 피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버거운 일을 할 때와 똑같이 20%의 일을 100%의 시간과 노력으로 해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되려 칭찬을 받기도 했다. 초심을 지킨다 라나... 꼼꼼하고 성실하다고?

 그는 주어진 직책에도 정말이지 빈틈이 없었다. 얼마나 빈틈이 없었냐면 벌써 세 해째 차장 승진에서 떨어진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근태에서의 이유가 아닌 것만은 틀림이 없다. 아마도 서류처리나 매출 실적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었던 듯한데, 그게 그의 전략이라는 것은 최근에 들어서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올 초 승진에 누락되고 몇 주만에 진행된 연봉협상을 마친 그의 표정은 종잡을 수 없이 밝았다. 동기들은 벌써 부장을 넘보는 마당에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겠지만, 부장보다 더 유리한 부분이 그에게는 확실히 있었다. 직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연봉과 업무량이 그것이었다. 겨우 구멍가게를 벗어나는 규모의 중소기업인 탓에 연봉이 높지 않은 우리 회사지만, 차장 이상이 되면 대부분 300만 원 이상의 월급을 받게 된다. 그런데 막상 300만 원을 받게 되면 299만 원을 받는 사람보다 세금을 훨씬 더 많이 내게 된다. 거기에 직책이 높아질수록 해야 할 일과 책임도 동시에 늘어나기에, 여러모로 경계에 서있던 그로서는 승진을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만 몰아가고 있지만, 앞 서 언급했듯이 그의 능력은 '늘이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적인 예가 정시퇴근이었다. 그는 놀랍게도 언제나 정시퇴근을 이루어 내고야 말았다. 도저히 정시퇴근이 불가능할 양의 업무를 퇴근 전까지 해내는 모습은, 마치 그전에 비축했던 힘을 한 순간에 짜내는 것 같기도 했는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어떻게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그의 부서에서 일하는 내 입사동기에게 들은 것은 "출근 무렵에는 분명 야근까지 가야 할 만한 일이었는데, 점심시간이 지나면 끝이 보일 정도로 줄어들어있어"라는 대답 정도였다. 나는 그의 초인적인 업무능력을 어느 정도 믿기로 했다. 그렇다고 그의 모든 능력을 다 믿는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 능력은 믿기도 힘들지만 인정하거나 거부할 근거조차 찾을 수 없다.
 어떻게 계속 같은 속도로 일을 하면서도 20분짜리 일을 1시간 동안 할 수 있는지 말이다. 전력질주를 하는데 한 시간 동안 100M 밖에 움직이지 못했다면 이해가 되겠는가?


아! 그렇다... 그는 땅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러닝머신... 그래, 그는 러닝머신 위에 선 사람이다.
다만 그 러닝머신의 계기판이 고장 난 것이다. 그는 항상 같은 속도로 달린다. 가끔 계기판에 2km/h이니 38km/h니 하는 표시가 깜빡거릴 뿐 그는 언제나 같은 폼과 속도로 달리는 것이다.
물론 평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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