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 계단을 올라 접이식 의자에 앉으면 소장이라는 작자가 카스텔라 봉지와 우유를 던지듯 건넨다. 돈 오천 원이 없는 사람은 신분증을 맡기고,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집으로 향한다. 15인승 승합차에 몸을 구겨 넣고 현장으로 향하는 내내 무릎이 쑤셔온다. 의자에는 저마다 궁둥이를 비비고 앉았지만, 발밑에 깔린 연장가방 때문에 쪼그리듯 앉은 채로 삼십여분 새벽길을 내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가는 현장에 도착해 도망치듯 자재를 옮기다 보면 이미 해는 중천이다. 10:30 다루끼를 옮기고 못을 뽑고 있을 즈음 현장관리자가 카스텔라 봉지와 캔커피를 던져놓고 간다. 12:15 현장 앞 밥집에서 고봉밥을 말아먹고 야외 파라솔에 앉았다. 자판기 커피에 필립모리스 담배를 한 개비 꼬나물고 있으면, 나이 든 일꾼들이 옆에 앉아 떡밥처럼 쥐어낸 카스텔라 안주에 소주로 입가심한다. 서툴고 어리숙해 오야에게 꾸지람을 들으며 오후일을 어영부영 마치고 신분증을 찾으러 다시 인력사무소로 향했다.
소장이라는 작자는 오천 원을 받아 금고에 넣고, 그 금고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돌려주며 아침에 남은 카스텔라 봉지를 건네준다.
2002년 1월 생에 처음으로 오만 원이 넘는 일당을 벌었다.
숙종께서 기력이 쇠하셨는지 입맛이 없어 수라상을 물리라 하시니, 신하들의 걱정이 사대문을 넘었다. 소식을 듣고 청나라 사신으로 다녀온 자들이 카스텔라를 정성 들여 만들어 진상했더니 숙종께서 입맛을 찾으셨다더라. 진귀한 설탕과 달걀이 듬뿍 들어간 '계란떡', '서양 떡'은 왕의 음식이었다. 농민들은 피죽을 쒀먹고, 양반들은 제 밥상에 오른 오곡도 구분하지 못하던 조선은 망하고 자유대한은 견고하니, 이제 그 왕의 음식은 노가다꾼 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