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물건

하루 한 글 쓰기 (15/15/365)

by 허병상

내게 버리지 못할 물건이 무엇일까? 못할 것은 없어도 버리기 싫은 것은 있다.

'대금'이 그것이다.


쉰을 넘어서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 평생 꼭 하고 싶은 데 못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악기라면 역시 대금이지.


고2 때였던가? 당시 부산 광복동 거리는 매우 번화한 곳이였다. 특히 밤이 되면 야시장이 들어서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틈이 나면 나는 사람들 구경을 나가곤 했다.

부평동 쪽에서 걸어오다 보면, 지금은 모두 없어졌지만, 문화극장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미화당 백화점이 있었다. 그쯤에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희한한 소리가 가슴을 울렸다. 가늘게 떨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데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소리를 따라 남포동 할매국수집 쪽으로 조금 더 가다보니 열살 형뻘되는 청년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대나무로 된 악기들을 앞에 펼쳐놓고.

이후 나는 그 청년의 팬이 되었고, 곁에 쭈그리고 앉아서 악기 소리를 듣곤 하였다.

소금을 사서 소리연습을 하다가 아버지한테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그 때 소리가 나를 깨웠다.

악기를 사고, 레슨을 받으며 대금에 빠져들었다.

하루 5~6시간은 예사로 대금 연습을 하였다. 10여 년 동안.

막내 내외가 런던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두어 달 곁방살이를 하며 런던 관광을 한 적이 있다. 숙소에는 마침 피아노를 연습할 방이 있었다. 런던에 가서도 매일 두 시간씩 빠짐없이 연습했으니 제대로 미쳤지. 흔히 '대금폐인'이라고 불리는 부류였다.

역사 공부는 내가 애호하는 분야여서, 외국 출장이라도 가면 빠짐없이 그곳 박물관을 방문하곤 하였다. 바로 인근에 대영박물관이 있었는데, 세 번밖에 구경가지 않았으니, 미쳤지! 당시 대영박물관은 입장료 조차 없었다.


내가 주로 한 분야는 정악인데, 그 중에서도 가곡 반주를 오래 하였다. 시조반주도 즐기는 분야였다.

대금과 함께 '표표히' 사는 꿈을 꾸었다. 신선이 되고 싶었을까? 최소한 주선(酒仙) 흉내는 내었다. 비오는 날, 텃밭 원두막에 앉아서, 혹은 칠흑같은 밤에 물 흐르는 소리에 대금 가락을 섞는 즐거움을 상상해 보시라.

그전에 못보던 세상을 보고, 만날 수 없던 '다른' 친구들을 만나서 한 20년 재미나게 잘 놀았다.


나는 노래부르기를 좋아한다. 아는 노래도 많아서 두 세 시간은 메들리로 계속할 수 있었다. 주로 흘러간 옛노래들이다. 클래식 듣기도 좋아한다.

그러나, 내 평생 노래 잘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도무지 박자개념이 없고, 음도 제멋대로다. 대금 역시 그랬다. 귀는 명인 수준인데, 솜씨는 도무지 늘지 않았다.


일흔을 넘기면서 세월이 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대금을 내려 놓았다.

그것은 근 20년 놀던 물을 떠난다는 뜻이었다. 거의 매주 만나던 친구들과 연을 끊는다는 의미였다. 이렇게 나의 인생 3분기를 접고 4분기를 시작하였다.

대금은 접었지만 악기는 아직 버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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