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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누구의 것인가

감정 리뷰 에세이 - 영화 <시타라:렛 걸스 드림>중에서

by 혼밤 마음
우리 딸들의 희망과 꿈을 응원하며 이 영화를 바칩니다.


짧지만 울림이 큰 문장이었다.

아무 말도 없는 애니메이션이었지만

그 말 한 줄이 모든 이야기를 말해줬다.



영화 <시타라: 렛 걸스 드림>

비행사가 되고 싶던 14살 소녀의 이야기다.

하늘을 나는 게 꿈이었던 그녀는,

결국 혼례복을 입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전 세계에서 매년 어린 신부 1200만 명의 꿈은 날지 못할 것입니다.



하늘을 날아야 할 아이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날개를 접는다.



날지 못한 꿈, 날아오른 희망



하지만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화면이 다시 열린다.



이번엔 그 14세 소녀의 여동생이 보인다.

언니가 꺾인 자리에서,

그녀는 성장해 비행기 조종석에 앉는다.



언니가 꿨던 꿈,

그 꿈을 물려받아

하늘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다시 등장하는 메시지.


우리 딸들의 희망과 꿈을 응원하며 이 영화를 바칩니다.



조혼,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인생



영화는 1970년대 파키스탄,
하지만 이 이야기는

지금도 어떤 나라들에선

‘현실’이다.



여전히 많은 소녀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혼이라는 이름 아래

삶의 방향을 잃는다.



이야기 속 소녀가 하늘이 아닌

혼인서약 앞에 선 것처럼.



그런데, 우리는 왜 날지 못할까?



영화를 보며 나는

조혼이라는 제도가 없는

대한민국을 떠올렸다.



우리는 비교적 자유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딸들에게, 아이들에게

“너는 원하는 걸 해도 돼”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왜,

이 땅의 청년들은

이렇게 자주 꿈을 포기할까?



“현실적이어야지”라는 벽



우리에게는 조혼 대신

‘현실’이라는 벽이 있다.



“그건 먹고살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그 나이에 무슨 도전을 해?”

“스펙 쌓고, 취업이 먼저야.”



누군가는 결혼이

누군가는 생계가

누군가는 부모의 기대가

그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방향으로

청춘의 조종간을 빼앗아간다.


그건 조혼만큼 잔인한 일 아닐까.



우리는 과연, 딸들의 꿈을 응원하고 있을까?



문화 차이를 생각하며 영화를 봤지만,

점점 나의 이야기,

우리 사회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딸의 꿈을 응원한다”라고 말하면서도

그 꿈이 너무 커 보이면

“좀 현실적이어야지”라는 말로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하게

그 날개를 접게 만든 건

어쩌면 우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부터 날아야 한다



이 영화가 나에게 남긴 건

단지 ‘슬픔’이나 ‘분노’가 아니다.

희망이었다.



비록 언니는 날지 못했지만

동생은 날았고,

그 꿈은 이어졌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루지 못한 나의 꿈,

늦었다고만 생각했던 그 갈망을

지금부터라도 다시 꺼내고 싶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 미래의 내 딸에게, 후배에게,

이 땅의 청년들에게.



“네 꿈은 누구의 것도 아닌,

오롯이 너의 것이야.”



꿈을 허락받는 세상.

아니, 꿈을 '허락'받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오길 바라며

나부터 다시 꿈꾸어 본다.




*출처 : 영화 <시타라: 렛 걸스 드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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