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뒷이야기』③대전에서 다시 묻는 '자치의 유전자'
지방은 늘 뒤에 있었다. 국토의 90%를 차지하지만, 결정권은 언제나 서울의 컨센서스 안에서만 작동했다. 하지만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지방은 왜 항상 주변이어야 하는가. 지방이 스스로 자신의 구조를 설계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자치는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과 함께 만든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사실상 종료 수순에 접어든 지금, 다시 그 질문을 꺼내 본다. 전국 시도별 위원회들도 해산 수순에 들어간 가운데, 대전시 지방시대위원회를 이끌어 온 최진혁 충남대학교 명예교수를 만났다. 그는 최근 『신지방의회론』(공저)을 펴내며 지방의회의 존재 의미를 다시 짚고자 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그가 인터뷰 내내 ‘현장’을 자주 언급했다는 점이다. 그는 교수였지만, 연구자라기보다는 실천가의 어조로 말했다.
“지방의원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주민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현장에서 만난 지방의원들은 그 말을 곧잘 인용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는 조용히 덧붙였다. “요즘은 국회의원만 무서워하고, 주민은 안중에 없어요.”
그는 지방의회를 주민대표기관으로 명확히 규정했다. 그리고 지방의회의 기능을 네 가지로 요약했다. 주민을 대표하는 대표성과, 조례를 만들 수 있는 입법권, 예산을 심의·의결하는 권한, 그리고 행정을 감시하는 감시기능이다. 이 네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작동하지 않으면, 지방의회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예산 심의는 그에게 있어 ‘전쟁’이다. 회계연도 시작 50일 전, 곧 11월이면 예산안이 의회로 넘어오고, 15일 전까지는 반드시 의결을 마쳐야 한다. 수천억 원 규모의 예산을 짧은 시간 내에 검토해야 하는 만큼, 의원들의 정치적 생존이 걸린 사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결산에는 이상하리만치 관심이 없어요.” 실제 예산이 계획대로 집행됐는지 평가하지 않는다면, 의회의 존재 이유는 점차 퇴색될 수밖에 없다.
그는 한때 국회 예산결산특위나 시도의회의 예산분석 업무와 관련해 자문을 요청받은 적이 있으며, 일부 예산 관련 협업 경험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말투는 부드럽지만, 숫자와 달력 앞에서는 단호했다.
집행기관과 의결기관의 관계에 대해서도 “견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협치의 문화를 강조했다. 그는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를 예로 들며, 정파가 다르더라도 제도적으로 협치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관용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싸우는 건 국회도 합니다. 하지만 싸우고 나서 함께 국가 운영을 하는 시스템이 있느냐 없느냐, 그게 성숙도를 가르는 겁니다.”
대전과 충남의 행정통합에 대해서는 더욱 단호했다. 그는 “지금이 적기”라며, 과거 직할시 승격으로 단절된 대전과 충남이 상호보완적 산업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진단했다. 연구와 기술 기반의 대전, 제조와 생산 중심의 충남. 이 둘이 만나면 수도권에 대응할 수 있는 중부권 광역경제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통합에 대해 과거와 지금의 조건이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당시에는 분리가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도 있었지만, 이제는 통합의 필요성과 실익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다만 그는 행정통합의 전제가 시민 수용성에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치적 명분만으로는 안 된다.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익을 수치와 사례로 설명하고, 토론과 참여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말했다. "쓴 약이 몸에 좋다"는 말처럼, 때로는 불편한 구조 개편을 감수해야 다음 세대가 자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포퓰리즘과 인기 경쟁에 갇힌 지방정치가 아니라, 시민과 의원이 함께 책임을 나누는 구조.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꿔야 할 '자치의 유전자'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