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장마철
북태평양기단과 오호츠크해기단은
이번에도 서로 온도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작년보다 더디긴 했지만 결국 외교 협상이 결렬되어 북진 중이다.
'다음 주부터는 비가 제법 올 것이다'
'아니 그 이상 내릴 것 같다.'
며칠 전에는 비가 내렸다.
날개 달린 수개미는 물론
내 피를 빨기 위한 모기 양과
전기파리채도 통과한다는 초超 파리까지
비바람을 피하려고 헐거운 방충망을 비집고 들어왔다.
한 두 마리 잡다가 끝내 지친다.
'이것도 운동이라고!'
주방 찬장을 뒤적거리며 열이 많이 나는 라면을 발견한다.
'파숑 송 계란 탁! '
'만두까지 두 알 첨벙!'
받침이 없어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라면 받침을 벗어나려고 애쓰는 책을 마주했다.
3분의 1 정도 읽다가 덮어 둔 책인데
나머지는 평생 안 읽을 듯해서
장마철 첫 라면받침 제물템이 되었다.
처음에는 책을 보면서 무엇인가 깨닫고
삶의 후반에 변화를 가져보겠다고
시멘트 같은 의지를 다졌건만..
정작 내 책장 속에 있는 책들은 거의 모두
국립중앙박물관 3층 메소포타미아관 정도일까??
(한 번 정도 가 봤나?)
이번에 끓인 라면은 물 조절도 괜찮았고
만두도 넣어 나름 만족했다.
'문득 신기했다.'
라면맛은 이렇게
끓일 때마다 조금씩 다르다.
'아 맞다!
책도 그랬어..'
뚱딴지처럼 뮤즈가 떠올랐다!
글을 다시 곱씹어 본다는 것!
유명한 작가분께서 하신 말이 갑가지 기억난다.
책을 보고 글을 읽는 것은 마치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내가 이 산을 한 번만 오를 때와
두 번 세 번 오를 때 그 기분은 사뭇 다르다.
비바람이 몰아칠 수 있고
어떤 날은 티 없이 맑고
또 다른 날은 A코스로 자연을 즐기거나
B코스로 험준한 지형에 도전하는 등
그 상황과 내가 그 사이에 경험한
지식들이 쌓여가면서
책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거나
지나쳤던 부분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세상에는 많은 느낌이 있고 그 술렁임들이
던져 주는 것은 시간차처럼 제각각이다.
최근에는 강렬하게 남아 있는 한 줄의 글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을 때가 있다.
책을 읽어 봤고 글을 안다는 것!
'나 이 책 읽어 봤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과연 한 번일까 두 번, 아니 서너 번 정도 돼야 할까?'
한 번도 안 읽고 유튜브나 블로그 줄거리를 보고 안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8살 먼지가 수북이 쌓인 다락방에서
한자와 어려운 단어로 뒤덮인 시를 볼 때와
연식으로 따지면 폐차를 하고도 남았을
수십 년이 지나간 이 시간에 읽을 때의 글을 받아내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산을 한 번가서 그 산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한번 글을 살펴본다고 그 내용을 알 수 있다고
지금은 쉽게 말을 못 한다.
무엇인가 곱씹고 돌아본다는 것!
'나에게는 새로운 뮤즈이자
더욱 다양한 르네상스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준
행복을 깨닫게 해 준 것이 바로 책이 아니었던가?!'
오늘 라면깔개가 되었던 책을 한번 펴 보자!
'처음 만나 철이 없던 나보다 조금은 달라졌으려나?'
라면 깔개로 쓰던
책을 보는 더욱 좋은 이유가 오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