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대 옆의 쓸쓸한 빈자리

편의점주 용식의 일상

by 글곱


“편의점 하신다고 들었어요.”

"요즘 알바 시급도 많이 올라서 운영하시기 힘들죠?"


표정 변화가 거의 없이 입만 조금씩 벌리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여자의 모습은 새초롬했으며 목소리는 까슬거렸다.

그녀가 하는 일은 대형 쇼핑몰 CS 상담원이라 했다.

하루 종일 고객 불평을 받아내서 그런지

말투마다 피곤함이 스며 있었다.


눈가에는 기미와 짙은 다크서클이 자리 잡고 있었고,

손톱은 짧게 깎여 있어서 키보드를 많이 치는 사람 특유의 실용적인 모습이었다.


용식은 민망한 듯 애꿎은 모자를 고쳐 쓰며 대답했다.

그리 덥지 않는 공간임에도 멋대로 엉킨 구레나룻 사이로 땀 방울이 송글 맺혔다.

커피 옆에 몇 조각 놓인 티슈로 어설픈 웃음과 함께 땀을 털어내며

그는 걸걸하고 낮은 저음으로 말했다.


“하하. 네. 뭐… 그냥, 먹고는 삽니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지금 이 자리가 답답하다’는 기색이 역력히 담겨 있었다.


용식은 커피잔을 들며 입가에 어울리지 않은 액자를 벽에 걸어둔 것처럼

억지웃음을 입꼬리까지 들쳐 올렸다.


그 미소는 오래 버티지 못할 살얼음판 위를 걸어가듯 위태로웠다.

카페 안은 살아 있는 크고 작은 소란들로 가득했다.

바깥에서는 화물 차량이 짧게 브레이크를 밟아대며 쇳소리가 부딪히는 마찰음 후에

상자를 수레에 옮겨 싣는 둔탁한 “탁, 탁” 소리가 규칙처럼 이어졌다.


옆자리에서는 일과를 마치고 온 남녀들이

낮은 웃음을 터뜨리며 여유로운 저녁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사이를 메우듯 바리스타가 스팀 피처를 돌려내며 '치이익' 우유 거품을 내는 소리,
머그잔끼리 부딪히며 울리는 '딸랑' 소리까지 뒤엉켜,
공간은 작은 오케스트라처럼 분주했다.


하지만 그 모든 소리 한가운데,
이 둘만은 유난히 고요했다.


“저는 하루 종일 전화만 받아요.”


여자가 적막한 분위기를 깨고 먼저 말했다.


"환불해 달라, 물건이 불량이다... 그런 얘기를 수십 통 들으면 사람이 예민해져요. 목소리만 들어도 이 사람이 화났구나, 짜증 났구나 다 알아요.

그런 얘기를 수십 통 들으면 사람이 예민해져요.”


용식은 맞장구쳤다.

“편의점도 비슷해요. 밤마다 술 취한 손님 와서 소리 지르고, 컵라면 뜯어놓고 돈도 안 내고...”


"정말요? 그런 사람도 있어요?"

"많아요. 요즘은 CCTV가 있어서 그나마 낫지, 예전에는..."


용식의 흐리는 말투에 그녀는 피식 웃었지만,

웃음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녀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결혼은… 왜 안 하셨어요?”


잠시 몇 초의 침묵뒤에

용식은 잠시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못한 거죠. 외모가 뭐… 이래서.”

모자챙을 더 깊이 눌러쓰며, 가발 아래로 삐져나온 자신의 머리카락을 은연중에 숨기려 했다.


웃어넘겼지만, 웃음 속에 체념이 어느 정도 스며 있었다.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잔에 남은 커피를 의미 없이 천천히 저었다.

거품이 사라지는 걸 지켜보며,

관심이 남아있지 않은 무심한 한 마디만 남겼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그 말에는 위로도, 격려도 없었다.

그냥 사실을 확인하는 정도의 온도였다. 마치 날씨 이야기를 하듯 담담했다.


그녀와 헤어진 뒤,

카페 앞 버스 정류장에서

용식은 한참을 서 있었다.

사람들이 흘러가고, 신호등 불빛이 바뀌고,

버스가 오가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자꾸 맴돌았다.

'사람 일은 모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휴대폰을 바라봤다.

짧은 인사라도 보내야 할 것 같았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카톡 창에 작은 말풍선이 떴다.

옆에 ‘1’이 선명히 붙었다.


시간이 흘러도, 밤이 깊어져도

그 숫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거뭇한 먼지가 양갈래로 퍼진 형광등 불빛 아래

그는 앉아 있었지만

더 이상 표정은 밝지 않았다.


가발 속 머리 위 빈자리처럼,

메시지 창의 ‘1’은 공허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결국 휴대폰을 내려놓고

재상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왜, 형?”


재상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흘러왔다.


“나… 오늘 소개팅했는데.”

“그래. 어땠는데?”

“카톡에 …1이 안 없어져.”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재상은 피식 웃더니 말했다.


"뭐긴 뭐야 매너 없는 사람에게 차인거지"

"그래도 덕분에 즐거웠어요!라고 한마디 해야 하는 거 아냐?

그 여자 답장이 멜로인 줄 아나? 휴먼인데.."


“그나저나 형도 이제 카톡 숫자 세는구나.”


용식은 대답하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로 담배 타는 소리만 들렸다.


둘은 한동안 소개팅 자리의 에피소드를 나눴다.

형광등 불빛은 여전히 희뿌옇게 내려앉았다.


빈 가게, 빈 머리, 빈 메시지 창.

그 속에서 용식은 담담히 생각했다.


'그렇다! 사람 일은 모른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안 되는 게 분명했다.

그 여자의 시계 보는 횟수, 스마트폰 확인하는 빈도, 커피를 남긴 채 일어서는 모습. 모든 게 명확한 신호였다.


그러나 적어도,

동생의 목소리만큼은

읽히지 않은 메시지가 아니었다.


"형, 내일 편의점 가서 맥주나 사갈게."

"야, 담배 그만 줄이라고."

"아니 맥주라니까.. 정신 차려, 같이 마시자."

"아... 그래."


집에 돌아와 용식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형광등을 껐다.

어둠 속에서도 냉장고 소리는 계속 웅웅거렸다.

내일도 편의점 문을 열 것이고, 재상이 담배를 사러 올 것이고, 하루가 시작될 것이었다.

읽히지 않은 메시지 역시 그대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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