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포기 못한 세 번째 분갈이

내 인생은 아직 오전이다!

by 글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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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분 싹 갈아야 해요"


사람 두어 명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비좁은 공간

꽃다발 덮어낼 비닐을 잘라내 귀를 간지럽히는 가위질 소리와 함께

꽃집 아주머니의 까슬한 음성이 들려왔다.


한쪽팔에 감겨 온 내 화분은 오후 3시가 넘어서 바삭해진 햇살을

내 듬직한 등으로 막아서인지 반대편에서 볼 때마다 더욱 초라한 명암처럼 짙어졌다.


반 정도 닳아 없어진 겉의 월계관 화분 문양을 더듬어 먼지와 함께 위로 쓸어 올리면

테두리도 야무지게 붙어있지 않아 한쪽은 부서진 채로 흙을 가두고 있었다.


때마침 볼일을 본 아주머니의 손은 화분 줄기로 향했고 머리채를 한 번에 낚아 잡듯

무심하면서 과감히 들어 올렸다.


화분에 동공과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투둑투둑' 뿌리 주변에 흙들이 떨어지면서

가발을 쓰고 다니다 바람에 홀랑 발가벗겨져 몸 둘 바를 몰라하는 아저씨처럼

나무뿌리 아래가 초라하고 훤하게 드러났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흙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속이 꽉 차고 압축된 뿌리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나가고 싶다고 소리라도 지를 수 있었으면 질렀을 텐데...

누구한테 말은 못 하고'


'이 비좁은 데서 얼마나 '갑갑' 아니 '답답'했을까?'

아무리 식물이지만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분갈이는 이번이 세 번째다.


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해 바로 취업 경쟁을 포기하고 고시촌으로 은둔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현실을 마주하지 않고 도망친 게 아닌가 한다.

지금은 대부분 끊겼지만 한해 한 두 번은 친구들이 놀러 왔었다


“야! 여긴 차 댈 곳이 없어”

"이런 구석에서 뭐 하냐"


크고 작은 직장에서 출발한 친구 녀석들은 모두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주식이야기 아이들 육아 이야기로 토픽이 이어지는데

나 혼자 멀찌감치 외로운 섬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한 2~3년이면 늦은 시간 보상받고 남들보다 앞서 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하나로

운명을 쉽게 예감했고 좌절했다.

그때만 해도 곧 이사를 갈 생각에 위로만 자라나는 화분에게 넉넉한 공간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사이에 길쭉하게 키가 자란 화분만큼

나 역시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날

아프고 힘들었던 내 신음 소리와 거친 숨소리를 다 듣고

함께 나누었던 유일한 녀석이다.


며칠 뒤

볕을 보지 못했는지

영 생기가 없다 했더니

가지 하나가 노랗게 메말라 갔다.


'단지 난 이 녀석을 살리고 싶었다'


아직 포기 못한 내 희망처럼

그렇게 나는 포기 못한 세 번째 분갈이를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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