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결핍 속에서 피어난 온기

by 글곱

성급하게 떠난 가을이 지나고 시린 겨울이 다가올 즈음,

모임은 어느새 익숙해졌다.


서툴던 대화는 제법 자연스러워졌고,

웃음 소리가 많아졌으며 낯설던 얼굴은 친근해졌다.


그날은 눈발이 제법 흩날리던 저녁이었다.


사무실 안에 모인 사람들은

뜨거운 라면 컵을 손에 쥐고 있었다.


밖은 차갑게 얼어붙었지만,

방 안은 온기가 번져 있었다.


“사람이 없다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소현은 컵라면을 휘젓다 고개를 들었다.

“집에 돌아와도 불 꺼진 방…근데, 여기 오면 불이 켜져 있는 것 같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빛은 조금 단단해져 있었다.


혜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래요.

아버지 돌보다 보니, 늘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오니까, 혼자가 아니더라고요.”


소현이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돈 잃은 건 아직도 아프지만…

그래도 이렇게 얘기하면서

저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에 성훈이 웃었다.


“다시 시작… 다들 그거 하려고 모인 거 아닌가요?”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방 안은 한순간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사랑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연인 사이의 사랑만이 아니었다.


서로의 고백을 들어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조용히 옆에 앉아 있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온기였다.


결핍 속에서 피어난 사랑은

세상이 강요하는 조건과는 달랐다.

학벌도, 직장도, 외모도 필요 없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민낯을 바라봐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들에게 남아 있는 사랑의 형태였다.

그날 밤, 창밖에는 눈이 소복히 쌓이고 있었다.


사무실 안의 불빛은 작았지만,

그 안에서 피어난 온기는

어떤 난방보다 따뜻했다.

그들은 깨달았다.


상실의 그림자를 품고도,

사랑은 여전히 남아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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