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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김작가 Apr 26. 2022

괜한 집착

눈이 마주치면 인연인 걸로


작업실을 들어서자마자 구석구석 보는 눈초리들이 심상치 않다.


흰머리처럼 먼지를 뒤집어쓴 갖가지 물건들은 나름 좋은 첫인상으로 내게 왔을터.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라고 일일이 토닥거려 주고 싶은 마음도 일부 있다만, 진정성이 퇴색한 부분을 인정 안 할 수도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게 된다.

다시 들여다보면 예쁜 아이들인데 쌓아 둔 소재들은 집착 딱지가 붙어버렸다.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때 오는 주변의 질타를 견뎌서는 안 된다.

못 견디고 더러워서라도 해야 남는 게 있는 것, 수동적인 인생으로 보여도 좋다.

그래서라도 첫인상의 설렘을 저버리지 않고 의리를 지켜 낸다면 게으름을 이겨낸 김 작가가 되지 않겠나.

욕심과 망설임이 문제다. 더 완벽한 결과물을 내고 싶다는 고민이 작업을 멈추게 한다. 이 결과물이 나와 일치해야 한다는 거대한 목표 말고 지금을 나타내는 에피소드 정도로 생각하자. 하나씩 해결하면 되는데...

이것저것 다 하려다가 놓치고 만다. 인연이 아니었다면 과감히 놓아줘야 한다. 내가 해야 할 작업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어울리는 짝꿍을 만나게 해 주는 것도 좋겠다.

널브러져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 누구부터 말을 걸어 볼까?


카페 문아지에 설치했었던 거미줄을 버리지 못하고 떼어 왔다.


디지털피아노를 분해했었다.


재회는 아니고 다시 관심,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하기 무색해서 그냥 들여다본다.


무덤덤히, "대충이라도 하는 게 중요해" 툭 던진 말에 반응이 없다.

윤희 씨네 수국 농장에서 받아 온 자개 찬장이 처음 볼 때 보다 주름지어 보인다.  페인트칠이나 새로 하고 마는 정도로 끝내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아서 슬슬 피하고 다녔던걸 고백한다. 칠이나 하고 리폼해서 사용할 거면 굳이 내가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케아에서 산뜻한 가구를 사 들이는 게 나을 테니까. 작업은 생각이란 걸 해야 한다. 무슨 천재 작가라고 딱 보면 떠오르겠나.

가끔은 실현 가능성 없는 발상에도 면박을 주지 않고 독창적인 생각이라고 박수를 쳐주며 스스로를 우러를 때 진짜 예술가는 모습을 나타낸다. 소심한 예술가는 조금만 지루해져도 하품을 해대서 긴장을 놓아서는 안된다.

잠깐 빨래를 널고 오거나 냉장고를 뒤지며 간식거리를 찾다가는 나랑은 할 얘기 끝났다는 듯이 사라져 버리기 일쑤니까 어색해서 도망가고 싶어도 때를 놓치면 안 된다. 


괜한 집착인가 싶어 정리한 몇 가지의 사물은 나무토막 몇 개와 플라스틱 재질의 용기들 정도다.

얼마간의 기간 내에 해결하지 못한다면 집착으로 분류해야 할까?

누군가 그런 무시무시한 규칙을 만들어 준다면...

하지만 간섭을 싫어해서 의논도 하지 않는 내가 버텨 낼 수 있을까?

심지어는 친구가 작업하다가 버린 것까지 구석에 대기시키고 시선만 피하고 있다.

나는 어떡할 거냐고 대기중인 사물들의 불만 섞인 한마디를 듣게 되면 되려 내가 화내게 될까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친구가 업싸이클센터를 떠나며 버리라던 마네킹, 괘종시계 케이스, 자개장 떼어낸 조각...

정희 언니가 너라면 살려낼 거라며 군산에서부터 들고 와 주고 간 칙칙한 한지 조명,

윤희 씨네 정지리 수국 농장에서 탈출한 자개 찬장이 큰 불만은 없어 보이지만 이제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듯한 표정이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모래 알갱이가 있는 풍경' 가운데


우리는 그것을 모래 알갱이라 알고 있지만

그 자신에게는 알갱이도 모래도 아니다.

모래 알갱이는 보편적이건, 개별적이건,

일시적이건, 지속적이건,

그릇된 것이건, 적절한 것이건,

이름 없이 지내는 익명의 상태에 익숙하다.


우리가 쳐다보고, 손을 대도 아무것도 아니다.

시선이나 감촉을 느끼지 못하기에.

창틀 위로 떨어졌다 함은 우리들의 문제일 뿐,

모래 알갱이에겐 전혀 특별한 모험이 아니다.

어디로 떨어지건 마찬가지.

벌써 착륙했는지, 아직 하강 중인지

분간조차 못하기에.




나의 문제일 뿐이다.

이게 집착이건 관심이건 사실 사물과는 아무런 관계가 성립할 수가 없단다.

이것조차 아니라니 더 고민이다.

사실이 아니라도 결국 내 문제라니 그렇다면 하던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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