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리안을 떠올렸다가 킨딘스키처럼 표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흐르게 하는 목재로 만들어진 원색의 기본도형이 있다. 아들이 사용하던것이냐고 묻겠지만 처음부터 이것은 내것으로 들인것이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교구를 사는 일은 없었다. 집안에 있는 사물들만 해도 다 도형으로 이루어진게 아닌가. 휴지를 사용하면서 원기둥을 알게 될것이고 부피가 줄어드는것도 알게 된다. 택배상자가 오면 물건을 꺼내고 들어앉아 놀다가 작은 상자로 책상을 만들어 넣기도 하면서 비례를 알게 된다. 중요한건 관심과 관찰이다.
다행인건가. 노산인 엄마는 구태여 배울거리를 사들이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이 교구들은 물론 새것은 아니었고 누군가 나눔한것을 받아온 것이다. 과천 살때였나보다. 그때는 개인 작업은 커녕 미술관련 어떠한 일도 하지 않던 때였지만 언제일지 뭘할지 몰라도 아니, 아들 교육에라도 사용하면 되지 하며 아들을 핑계 삼아 삐져 나오려는 창작욕구를 겨우 눌러 두고 있었나보다. 그 어떤것도 시작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술술 풀려 사라져 버렸고 이제 다시 이 상자를 열었다.
퇴촌에 들어와 아이들 미술수업을 하며 야금야금 사용도 했지만 워낙 많은 양이라서 아직도 내 호기심을 채울 양으로 충분하다.
이 거대한 양의 교구로 많은 아이들이 영재가 되었을까?
아이들용 교구여서 사이즈도 정확하고 나무의 질도 좋다.
거창하게 몬드리안을 떠올리며 시작했지만 대단한 발상은 아니었다. 원색의 색감과 단순한 도형이 몬드리안의 차가운 추상을 떠올리게 했다는 정도?
대상의 재현이 아닌 단순화와 절제로 향했던 그의 표현방법과는 반대로,
단순화 되어 차가워진 대상에 따뜻한 입김이라도 불어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칸딘스키의 추상쯤이면
불안하지만 명랑한 내 감정을 담아낼 수 있을것 같아서...
어디에도 답은 없다는 다행스러운 이유로 사물에 대한 첫인상을 그대로 작업에 끌고 가보고 싶다.
문제는 즉흥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