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을 잃은 물건이 정리되기 위한 준비 모임에 참여했다. 짝이 없는 상황에서는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없게 태어난 존재들의 최후는 씁쓸하다.
사물도 짝을 잃으면 슬퍼할까?
짝을 잃고 폐기되는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게 가엾어 보이는 것도 인간의 마음일 테지.
퇴촌의 아름다운 공간 베짱이도서관이 문을 닫는다. 5년을 개미 회원들과 함께한 도서관이 휴식을 갖게 되면서 그 안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쓸만한 것들은 새 주인을 찾아가거나 제주인을 찾아갔다.
거칠만한 눈길을 모두 거쳐가면서 남게 된 찻잔의 품속에 살던 차 거름망이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남겨져 있다. 다기의 겉 그릇은 깨진 건지 사라졌고 도자기로 만들어진 차 거름 그릇만 있다.
다기의 속에 들어가는 그릇이 저렇게 예쁜 건 처음이다. 꽃무늬가 은은하게 그려져 있어서 짝이 없어 보이는 것보단 혼자만의 매력이 있는 아이로 보였다.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내가 못 봤다면 어쩔 뻔했나 싶은 마음으로.
너는 무엇이 될래?
그 자체로 예뻐서 뭘 해줘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임무를 주는 게 좋겠다. 또 버림받고 싶지는 않다했다. 깨지지만 않는다면야....
임무를 수행하게 하려면 본연의 모습을 관찰하는 게 필요하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차 거름망이었던 전직이 드러나는 여러 개의 구멍들이 보였다.
그릇의 측면과 아랫부분까지 충분한 구멍이 보였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 확실히 보였다.
화분이었다.
꺾어 심기를 할 수 있는 화초를 몇 개 옮겨 심고 물받이까지 해주니 본래 화분이었다는 표정으로 편안해한다.
시간을 더 들인다면야 조명이 되어도 좋을것 같다만...왠만하면 조명이 되니 화분이 더 좋겠다.
어디 더 없나...
전봇대마다 '이런 아이를 찾습니다' 스티커 광고라도 붙여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