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뭐였든 그게 뭐가 중요해.
이제부터 다시 시작할 건데.
화려했던 시절은 이제 잊는 게 편해.
아니 그보다 더 화려해질 수도 있으니 의기소침해 하진 말고.
태생이 고급진 아이 같진 않았다.
화려하게 치장했지만 소장하겠다고 나서는 임자도 없었을...
무대를 위한 소품이면 되었을 정도의 임무를 수행했겠지.
나이가 찬 며느리를 가볍게 대하지는 못하시던 시어머니께서 휙 하고 던지고 가셨던 물건이었다.
가볍게 안대하는데 왜 휙 던지는지 이해가 안 가겠지만 기분이 나쁘신 것도 마음이 뾰족하신 것도 아닌데 항상 뭔가를 휙 하고 던져 놓고 가셨다.
그냥 스타일인 거다.
오해는 안 했어야 했지만 기분은 별로였다.
아이를 출산하고 시어머님과 함께 과천에 살 때였다.
할 말 다하는 며느리 앞에서 스트레스를 받으시면서도 며느리가 좋아하는 게 뭔지 싶어서 그러셨던지 휙휙 던져두고 노인복지관으로 가버리시곤 했다.
검소하기로 소문난 시어머님과 업사이클 좋아하는 며느리의 환상의 콜라보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그때는 짜증 좀 냈었다. 뭘 그리 자꾸 가져와서 묻지도 않고 던져두고 가시는지...
근데 또 좀 살펴보면 맘에 드는 게 많았다.
자꾸 주워 오시다 보니 어머님의 눈높이도 꽤 높아지셨던 것 같다.
앉아서 홀랑홀랑 아이템을 받아먹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버리지 못하고 끌고 다니다가 탄생한 조명이다.
누가 봐도 벨리댄스 모자인데 어떻게 조명을 생각했을까?
철재로 만들어진 전구 안전망이 준 아이디어였다. 안전망에 뭐든 씌우면 전등이 될 거라고...
이 조명이 가장 잘 어울렸던 장면이 있다.
조명 아래에서 랄랄라 책방 김소라 작가님이 타로를 봐주셨는데 타로를 위해 태어난 물건처럼 붉은 담요 위 카드 패를 비추던 자태는 거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너의 임무가 다시 주어졌다.
한 개 더 만들어 보려고 장롱 안 모자 상자를 뒤적거려 보지만 이만한 게 없다.
업사이클은 그렇다. 딱 한 개가 만들어진다.
뜨개질 모자를 몇 개 만들어 작업해볼까 싶기도 하지만 이 맛은 안 날 것 같다.
어머님이 어쩌다 오셔서 보실 때마다 이거 어머님이 주워다 주신 거예요 하면 쑥스러워하시면서도 흐뭇해 보이신다. 하나의 추억이 사진첩에 꽂혔다.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