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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김작가 Jun 26. 2022

버릴 사람은 못된다




늦은 밤 누구에게 말을 걸까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가 눈이 마주친 사물에게 말을 건네 본다.

이런 시간에 말을 걸어도 흔쾌히 허락할만한 상대라는 확신에 일단 사진 한컷을 찍어 둔다.

오래 기다렸다고 한다.

당신을 처음 만난 게 코로나 이전이니까 벌써 2년은 족히 되었겠네.

창작소 취미 미술반 샤갈샤갈팀의 윤희 씨 남편이 운영하는 수국 농장 비닐하우스에 구경 갔던 날 연탄재와 매치되어 있던 모습이 첫 대면이었다.

저기 있을 물건이 아닌데....

일부러 연탄재와 매치시킨 건 아닌 거지?

욕심났지만 사용하고 있는 물건을 달라고 할 수 없었다. 반드시 필요한 물건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취사도구 몇 가지가 수납되어 있었다.

다른 수납장을 사주고 달라고 할까까지 생각하다 차마 말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는데 얼마 전에 농담처럼 건넨 말에 흔쾌히 바로 옮기자던 윤희 씨.

진작 달라고 할걸... 미안해.

많이 상했다.

이제 와서 묻는 게 좀 그렇지만 어떻게 살아왔어.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누가 답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비밀은 없다는 듯이 술술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정지리에 윤희 씨 시어머니가 아이들 키울 때 장만해서 재미나게 사용하시다가 시어머니만큼 나이 들어서 반겨줄 곳이 없어진 거지. 찬장에는 가족들과 함께 사용하던 예쁜 그릇이 담겨 있었고 귀한 꿀 항아리도 넣어 두었었지. 병원에 다녀오면 약봉지도 넣어 두고 온갖게 내 품 안에 들락거렸어.

나이 든 주인은 곁에 두던 많은 물건이 필요 없어졌고 이제는 정리해야 하는 물건이 되어 이 자리까지 온 거지.

큰 기대 없이 농장이 내 마지막 자리려니 했고 연탄재만큼만 태우다 가자했지.

찬장 문에 달린 손잡이 색깔 봤어? 주인의 손때가 세월만큼 쌓여 누런색이 되었잖아.

난 할 만큼 했지. 왜 날 다시 태어나게 하려는 거야.

체념도 푸념도 아닌 자연의 이치를 따라가는 노파의 어투로 힘겹게 말을 했다.

나는 시간을 두지 않고 바로 말을 이어갔다.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대상에게 포기라는 단어가 생각난다면 큰일이라는 생각이었다. 같이 호흡해도 좋은 작업이 될까 말까인데 한쪽에서 호흡을 멈춘다면 나도 끝까지 작업할 힘이 생기질 않는다.

힘없는 말투에 당황스러웠지만 태연한 척 나의 의견을 어필했다.

일단 너의 시대가 다시 돌아왔다는 거야.

레트로 들어봤지. 워낙 내가 오래된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트렌드가 그렇기도 해서 꼼꼼히 손 보면 내 아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어 질지도 몰라.

아... 사실 네가 맘에 들어.



그렇게 꼬셔서 데리고 와놓고...

오랜 시간 눈길을 피하고 다녔다.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지인이 언제 작업하냐고 물어봐도 그냥 얼버무리고...

아마 이웃은 언젠가는 버리겠거니 했을 거다.

버릴 사람은 못된다.


버리지는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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