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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김작가 May 09. 2022

전형적인 것을
찾기 위해서라는 변명

 

간판 하나 제대로 없는 책방을 하고 있었다.

망설임이 문제인 나는, 망설이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고 그 망설임은 가장 전형적인 것을 찾기 위해서라는 변명으로 위장되곤 한다.

하지만 늘 완벽한 적은 없다.

결국 내키는 대로 하면 그만인 것을 저지를 때마다 알아차린다.

뭐라도 해야 했다. 책방이라는 표시라도 해달라는 나를 위한 요구들 덕에 작은 간판이 탄생했다.


작업을 위해 있는 재료들을 둘러본 후 눈에 띄는 한 두 가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본다.

업싸이클을 한답시고 사들인 게 너무 많아져버렸다. 이 재료들을 반이상 사용하기 전에는 구입하지 말자는 다짐을 한다. 있는 것 안에서 활용하고 최소한의 재료만 구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작업하려고 한다.

그렇게 말하기엔 없는 게 없는 작업실이라 민망하지만 그래도 살 것은 끝도 없이 생기는 법이다.

최소한의 칠과 구입이지만 아름답고 견고하고 독창적일 것!

낯선 조합만으로도 독창적이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잘 만난 조합일 때 그렇다는 것이기에 그 고민이 관건이 된다.



출연 : 은주가 주어 다 준 폐 액자

        창작소 수강생 학부형이 기부한 교구 상자

        문아지 카페 정리의 잔해인 칠판

        어디선가 굴러온 미니어처 찻잔

        30년 넘은 잡지 사은품 미니 북 세트

        거미가 아닌 내가 친 거미줄


일단, 언니는 뭐라도 만들 것 같다며 은주가 주어다 준 폐액자틀이 몇 개 보인다.

유화에 사용했던 것 같은 액자의 금색, 은색의 화려함이 식상하고 무거워 보이지만 칠을 하면 무난하겠다.

금색보단 은색이 좋고 은색보단 부식된 색이 좋다. 유광보다는 무광이 좋다.

전생에 양반은 아니었나보다.

카페 문아지에서 5년은 족히 사용한 버려야 마땅할 만큼 지저분했던 이젤형 칠판은 깨끗하게 닦아서 락카를 뿌렸다.

외부용 이니까 유성 락카를 뿌리는 게 안전하다. 다행히 좋아하는 카키색이 있었다.

글씨는 프린트해서 스텐실을 해서 넣었고 인연을 엮기 위한 그물을 치듯 거미줄을 설치했다.

스텐실기법은 글자 한자한자 칼로 오려내야하는 일이고 거미줄은 실로 교차하는 부분마다 묶고 붙여 만드는 느린 작업이다. 한땀 한땀 만들어가는 동안 죽어가던 사물들의 호흡이 돌아오는걸 느낀다.


책방을 표현하기 위해 뭘 넣으면 좋을까?

아이들 교구 상자의 뚜껑을 빼고 세우니 미니책장이 된다. 젯소를 칠하고 페인팅을 두 번 더 하니 새살림이다.

30년도 넘게 가지고 다니던 잡지 부록으로 받은 미니 책이 몇 권 있어서 꽂아 보니 사이즈가 맞춤이다.

착착 맞아 들어갈 땐 이렇게 쉽게 풀린다. 색상도 얼추 잘 어울리고 김 작가 스타일이다.

책장으로 보이는 곳에 안내 문구라도 넣어야 할 것 같다. 지금 안 하면 언제 할지 기약 없을 텐데...

생각이 안 나니 비워 둔다.

어디선가 굴러 들어온 미니어처 커피잔을 아이들 주면 좋아할 것 같아서 보관해 두었었지만 쓰는 사람이 임자지. 다른 사물과 어울리도록 살짝 칠해줬다. 책과 찻잔을 배치하니 카페 퇴촌 책방 간판의 역할을 수행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탄생한 퇴촌 책방 간판은 지금도 꿋꿋이 서서 오가는 손님을 안내한다.

칠을 꼼꼼히 해서 먼지가 타면 물청소도 가능하다.

가능은 하지만 자주는 못하는 허점이 있기는 하다.

생각난 김에 물 좀 뿌려 줘야지.


아래 사진은 수국 농장을 하는 윤희 씨가 생일에 선물한 수국들과 함께한 모습이다.

내가 사랑받으니 간판도 호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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