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주웠다.
달 하나
미처 수거 스티커를 붙이지 못한 물건이 분리수거함에 기대어 졸고 있다.
딱 떨어지는 큰 원 모양으로 뚫린 깔끔한 인상의 목재.
제대로 된 공구가 갖추어진 작업대에서 이루어진 컷팅이 분명하다. 저 정도의 원을 오려내려면 지그를 만들어야 작업이 가능하겠지?
내 실력과 공구로는 해내기 어려운 작업이라서 외면하기 어렵다. 기본 도형 중에서도 원은 단순해 보이지만 정확히 자르기가 까다롭다. 쉽게 자를 수 있는 공구를 갖은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을 원이 잘려나간 합판이 내게 쓸모 있게 다가온 걸 보면 인연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밤이었다.
달을 주섬주섬 담아 서둘러 작업실로 향했다. 둥근 모양을 보면 시시하게도 해나 달 정도를 떠올리고 만다. 누구나 생각할 법하지만 누구나 공감할만한 연상이기도 하니까 나쁘진 않다고 자조한다. 밤이기도 했지만 해보단 달이 내 감성에 더 잘 맞는다. 달이건 해건 내가 정한다고 해서 동그라미가 바로 그렇게 보이진 않겠지만 노란색 테두리 정도 해 주면 달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밤이 늦었지만 달을 위한 동네, 동네를 위한 달을 위해 작업에 돌입했다. 달이 있으니 동네가 필요했고 달에는 다정한 얼굴이 보이겠지. 달 속에 매일 얼굴을 비추어 보는 게 어떨까 하며 거울을 만들어보기로 한다. 원형 틀 뒤로 두꺼운 거울을 붙이고 앞에 정겨운 마을 풍경을 원근감 있게 배치한다. 합판에 대략의 스케치만 하고 직소기로 시원하게 건물들을 오려냈다. 직소기만큼은 자신 있게 다루는 편이어서 마음먹은 대로 모양을 만들어낼 수 있다. 동화 속에나 있을 집들이 달빛에 춤을 추고 달빛이 비친 창문들은 꿈나라 여행 중이다. 입체감을 주기 위해 삼단계로 차곡차곡 건물들을 붙여 배열하니 동네 뒤로 보름달이 제자리다. 그래 이런 건 별생각 없이 만드는 게 최고다. 대단한 거 만들겠다고 고민하다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뭐든 대충 하면 그만이다. 그래도 내가 만들면 내 이야기가 담기기 마련이다. 그만큼 난 내 이야기를 잘 표현하는 사람이지. 말로는 못해도... 이래서 내가 만들고 쓰고 그리고 하나보다. 이러고 나면 개운해진다. 내 얘기 좀 들어달라고 친구에게 보채다가 제대로 안 듣는 것 같은 서운함을 느끼느니 스스로의 이야기를 이렇게 털어놓으면 되는 거다. 뭔 소리냐고? 아, 그런 게 있다. 이런 정체 모를 대답 때문에 전형적인 T인 동생은 나를 답답해할 때가 많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 헤집어 펼쳐 놓으면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가 아니라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그래서 생각난 대로 말해야 나에게는 진실이다.
앞쪽에는 거울의 실용적인 면을 고려해서 수납공간을 만들었는데 붙이고 나니 안정감이 더해졌다. 업사이클 작업을 할 때 실용적인 면을 추가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생활 속에 들어와 같이 시간에 물들어 가다 보면 어느새 친구가 되기도 해서 든든하다. 방안에 친구만 모여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원의 안쪽 라인에 노란색을 칠해서 나는 달이오라고 말하도록 부축 인다. 썩 어울리는 것 같진 않지만 눈에 띠지는 않으니 놔두기로 한다. 언젠가 이거다 싶은 색이 떠오르면 그때 변화를 주는 것도 좋겠다.
전체 색은 나무전용 스테인으로 마무리해서 목재의 느낌을 살렸다.
물론 코팅은 무광으로 여러 번 해서 오염에도 강하게 마무리했다.
내가 사는 마을에 둥근달이 떴다.